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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편전서(耳溪三編全書)-16世祖 홍양호

홍만식(뜸부기) 2018. 9. 1. 09:45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년~1802년)의 문집을 간행하고 나서  손자 洪敬謨가 全稿를 모아 筆寫해 家藏해 둔 책. 94권 49책. 년보 2권 1책 합 96권 50책.

본관은 풍산(). 초명은 양한(). 자는 한사(), 호는 이계(). 시호는 문헌.

홍만회()의 증손으로, 조부는 군수 홍중성()이고, 부는 홍진보()이며, 모는 심수현()의 딸이다. 이조판서 홍경모()의 조부이다.

1747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75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 등준시()에 뽑히기도 하였고. 1777년 홍국영()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경흥부사로 밀려났다가 홍국영이 실각되면서 1781년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이어 사간원대사간·사헌부대사헌·평안도관찰사·이조판서 등을 거쳐 1799년에는 홍문관·예문관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하는 최고의 영예를 지냈다.

두 차례에 걸쳐 연경()을 다녀오면서 중국의 석학들과 교유해 문명()을 날렸으며, 고증학()을 수용·보급하는 데 기여하였다.


『영조실록』·『국조보감』·『갱장록()』·『동문휘고()』를 비롯한 각종 편찬사업을 주관하기도 했으며, 지방관의 지침서인 『목민대방()』

을 저술하였다.


특히, 1764년에는 일본에 가는 통신사(使) 일행에게 부탁해 벚나무 묘목을 들여다가 서울 우이동에 심어 뒷날의 경승지를 이루게도 하였다.

1801년 판중추부사로 물러났다가 이듬 해 79세의 나이로 죽었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고  바르면서 숙련되고 법칙이 있어서 당시 조정의 신료 중에 따를 사람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글씨도 진체()와 당체()에 뛰어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곡산의 신덕왕후사제구기비()와 수원성()의 북문루상량문()이 대표적이다.   

『耳溪三編全書』는 (內編) 64권의 詩文集, (外編) 18권의 著書, (別編) 12권의 雜著, (年譜)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內編은 권1~13 辭賦詩, 권14~15 書, 권16~17 序, 권18~21 記, 권22~23 題跋, 권24 頌銘贊箴辨論, 권25 解, 傳, 권26 遺事 等, 권27 祭文, 哀辭, 권28 碑, 권29~30 神道碑, 권31~36 墓碣銘, 권37~40 墓誌銘, 권41 墓表, 권42~46 諡狀, 권47~49 代撰文, 권50 上書, 권51~56 疏箚, 권57~58 啓, 권59~62 筵說, 권63~64 功令文이다. 外編은 권65~70 易象翼傳, 권71 群書發悱, 권72 六書經緯, 권73 萬物原始, 권74~79 海東名將傳, 권80 格致外篇, 권81 牧民大方, 권82 鄕約折中이다. 別編은 권83 北塞記略, 권84~85 燕遼雜記, 권86~90 官遊紀行, 日記類, 권91~94 狀啓, 報牒, 關牒, 권95~96 年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