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조 4

쓰레기더미에서 보물을 캐다

만퇴당(홍만조) 묘역 성역화사업 중 자은영당 옆 추원각이 지붕의 기와가 내려앉아 비가 새고 고장 난 문을 오랫동안 방치해 논 상태라 흉물에 가깝다. 먼지 쌓인 쇼파등 잡동사니를 치우다 보니 장지문이 보였다. 옛날 종택의 안방 중간에 있었던 장지문이 아닐까? 자세히 보니 장지문에 덧댄 창호지에서 글씨가 보여서 물에 불려 고문서를 3장을 살려냈다. 첫 번째 문서와 둘째 문서는 영동 현감인 좌랑공( 重衡) 묘소와 관련된 문서로 보인다. 좌랑공을 양성(안성)에 모셨다는 내용 같은데 상세한 내용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세 번째 문서는 토지매매와 관련된 문서로 보인다. 갑진(甲辰)년에 작성되었는데 종손인 건모(建謨) 선조는 1765년에 태어나 90세인 1854년에 돌아가셨으니 1844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

평양생사당홍만조초상화 충남도유형문화재 된다.

2021년 10월 30일 풍산홍씨정익공파종회 제2차 이사회가 열리는 도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평양생사당에 걸렸던 만퇴당홍만조초상화가 충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고시 된 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였다. 맨위 초상화가 평양생사당에 걸렸던 초사화이며, 아래 초상화는 1936년에 이모한 초상화이다. 생사당 [生祠堂] 은 예전에, 백성들이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기 위하여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사지내는 사당을 이르던 말이다. 북원록 1권( 1760년(영조 36년) ①이의봉(李義鳳)의 일기 ) 돌아오는 길에 생사당(生祠堂)에 있는 한 방에 들어가니 9명의 관찰사 초상화를 봉안하고 있었다. ②이원익(李元翼), ③민성휘(閔聖徽), ④김기종(金起宗), ⑤정만화(鄭萬和), ⑥허적(許積), ⑦이만원(李萬元), ..

카테고리 없음 2021.10.31

만전당홍가신선생 후손을 만나다

홍가신(洪可臣 1541~1615)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당(晩全堂)·간옹(艮翁). 아버지는 홍온(洪昷)이며, 어머니는 군수 신윤필(申允弼)의 딸이다. 민순(閔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6년(선조29)에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1604년 청난공신이 된 홍가신 선생의 후손 승균씨를 만났다. 젊지만 숭조정신이 탁월하다. 봉황이 참새를 낳을리 없다. 만전당홍가신연구,수원화성박물관 학술대회의 조선중기 홍가신.허목 사상과 학문,만전당홍가신기념관 도록, 그리고 후손 홍승균씨가 저술한 청난공신 만전당 홍가신등 많은 책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준비된것이 없다. 부끄럽다. 만퇴당과 모당공을 내세웠지만 무었으로 선조님을 소개를 할까? 궁리 끝에 풍산홍씨정익공파종회 소개책자와 국보 ..

카테고리 없음 2021.09.09

기사계첩 국보된다.

홍만조초상화 풍산홍씨 정익공파종회의 유물인 기사계첩이 1978년 12월 7일 보물 639호로 지정된 후 42년 만 에 국보로 승격된다. 숙종 하사로부터 300년간 보관을 잘해준 종가의 공로가 크다. 기사계첩은 현재 박물관과 개인 소장 등 총 5건이 전하는데 이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지난해 국보 325호로 지정됐다. 우리 문중의 기사계첩은 보관상태가 매우 좋다는 점 뿐 아니라 "晩退堂藏", "傳家寶藏" 이라는 글씨가 기록되었고, 화첩을 내함(內函)에 넣고 호갑(護匣, 가죽함)을 두른 후 외궤(外櫃)에 넣었는데 이 삼중의 보호장치가 그대로 전해진 점이주목 받았다고 한다. 풍산홍씨 정익공파종회 회장인 나도 실물을 본 적이 없다. 종중의 재산목록에 수록 되었지만 종가에 보관되어 있어서 분쟁이 있었지만 원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