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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판서 홍명한(洪名漢)초상화

홍만식(뜸부기) 2021. 1. 23. 21:15

조선 후기의 문신 홍명한(洪名漢, 1724년∼1774년)은 풍산홍씨 16세조 이시다.

선조님 시제 봉행을 지극정성을 다하다 보니 종손들을 만나게 되어 선조님의 귀한 자료를 확보 하게 되었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초본 보존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자료를 보내어 초상화를 온국민과 공유하도록 하겠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군평(君平). 시림와(市林窩), 남원공파.

고조부는 증호조참판 예산현감 홍주문(洪柱文), 증조부는 승정원도승지 홍만종(洪萬鍾), 조부는 증이조판서 전라도관찰사 홍중하(洪重夏), 부는 증의정부좌찬성 대사헌 홍경보(洪景輔)이며, 모는 승지 심계량(沈季良)의 딸이다.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하여 금부도사로 재직 중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수찬에 특제(特除)되었으며, 그 뒤 정언·수찬·교리 등을 거쳐, 1758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이어 1761년 동래부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대사간·승지 등을 거쳐, 1763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 때 흉년으로 금주령 하에서 부민(府民)이 이를 위반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다. 곧 대사헌으로 복직되었으며, 이듬해 대사간이 되어 관비를 절약하고 언로를 넓히며 능력있는 인재를 널리 구할 것 등을 상소하였다.

 

1768년 승지·형조참판·도승지를 거쳐 이듬해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771년 형조판서를 역임한 뒤 개성유수가 되었다.

영조의 문예진흥책의 하나인 편찬사업에 관여하여 1770년 『동국문헌비고』의 감인당상(監印堂上)이 되어 이의 간행에 책임을 맡았다.

 

지속적으로 문중의 유물을 발굴하여 세상에 공개하는 사업을 펼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