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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주도 역대 목사 총정리!! 1대 최서부터 312대 조종환까지

홍만식(뜸부기) 2016. 7. 14. 14:32

 

 

 

제주목사란? 조선시대 제주목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 문관. 형옥.소송의 처리, 조세징수, 군마관리, 섬 방위 등 제주지방의 모든 행정을 집행했던 수령(오늘날 제주도지사와 같음)

 

참고로 제주판관은 오늘날 부지사와 같습니다. 또 조선시대 대정현감이나 정의현감은 오늘날 제주시장이나 서귀포시장과 같습니다.

 

역대 목사

 

초대 목사 최서 : 탐라 통치권을 원()으로부터 고려가 수복한 뒤 1295(충렬왕 21) 최서가 초대 목사로 임명됨. 이 때부터 탐라가 아닌 제주로 불리기 시작. 원나라 다루가치를 대신, 정식으로 제주목사가 부임.

 

2대 목사 이백겸 : 청렴결백, 도민들에게 선정을 베푼 수령.

 

3대 목사 송영 : 청렴결백한 목민관. 이백겸과 마찬가지로 선정을 베풀었음

 

4대 목사 장윤화 : 가렴주구를 자행한 목민관. 1318년 도민들에 축출돼 파직당했음.

 

5대 목사 송영 : 백성들의 요청으로 복직. 외적방위 및 도민들을 위한 선정에 힘쓰고 백성들을 안무했음.

 

6대 목사 임숙 (1323)

 

7대 목사 박순인 (1323)

 

8대 목사 조익청 (1332)

 

9대 목사 정천기 : 1351(고려 충정왕 3) 이제현의 탄핵으로 제주 목사로 좌천됨. 1352(공민왕 1) 난에 연루돼 주살됨.

 

10대 목사 이권 : 1352(공민왕 1) 10월 부임

 

11대 목사 장천년 : 1356(공민왕 5) 부임. 원나라 목호들에 피살됨.

 

12대 목사 윤시우 : 1356(공민왕 5) 10월 권문세족 기철 일파와 관련된 원나라 목호 등을 처단하기 위해 제주로 부임했으나 오히려 목호들에게 피살됨.

 

13대 목사 이원항 : 1357(공민왕 6) 부임

 

14대 목사 박도손 : 1362(공민왕 11) 부임. 원나라 목호들이 제주 성주 고복수를 사주,원나라 만호(무관직)로 하여금 박도손을 주살하도록 했음. 결국 원나라 만호에 피살됨.

 

15대 목사 성준덕 : 1362(공민왕 11) 부임. 오자마자 제주 성주 고복수의 난을 평정함. 조정에서 파견된 선무사와 함께 제주민들을 안무함.

 

16대 목사 박윤청 : 1369(공민왕 18) 9월 부임

 

17대 목사 이용장 : 1372(공민왕 21) 명나라에 보낼 말을 고르려고 제주로 부임했는데 원나라 목호들에게 피살됨.

 

18대 목사 우인열 : 목호의 난 수습하기 위해 1372(공민왕 21) 부임.

 

19대 목사 이하생 : 1372(공민왕 21) 6월 부임. 1374(공민왕 23) 목호들에게 항복을 권하다가 도리어 피살됨.

 

- 최영 장군, 1374(공민왕 23) 8월 목호토벌을 위해 250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제주로 와 목호 완전 토벌.

 

20대 목사 박윤청 : 16대 목사. 1374(공민왕 23) 9월 최영 장군을 도와 목호토벌 뒤 목사로 다시 임명. 그해 10월 차현유에 피살됨.

 

21대 목사 김중광 : 1375(우왕 1) 부임. 차현유의 난 진압.

 

22대 목사 이영익 : 1377(우왕 3) 부임

 

23대 목사 노성렬 : 1380(우왕 6) 부임.

 

24대 목사 이지부 : 1381(우왕 7) 부임.

 

25대 목사 박의용 : 1382(우왕 8) 부임.

 

26대 목사 김중광 : 21대 목사 1383(우왕 9) 다시 부임. 1385(우왕 11) 8월 말 100여필 조정에 진상.

 

27대 목사 박영무 : 1385(우왕 11) 부임.

 

28대 목사 옥산기 : 1388(우왕 14) 부임.

 

29대 목사 양달인 : 1389(창왕 1) 부임.

 

30대 목사 유구산 : 1391(공양왕 2)부터 1393(조선 태조 2)까지 재임.

-고려왕조 멸망, 조선왕조 개국-

 

31대 목사 여의손 : 1393(태조 2)에서 1395(태조 4) 4월까지 재임.

 

1394(태조 3) 제주향교 설립

32대 목사 이침 : 1395(태조 4) 4월부터 1397(태조 6) 4월까지 재임.

 

33대 목사 김천신 : 1397(태조 6) 4월부터 1399(정종 1) 7월까지 재임.

 

34대 목사 전사민 : 1399(정종 1) 8얼부터 1401(태종 1) 10월까지 재임.

 

35대 목사 박덕공 : 1401(태종 1) 10월부터 1403(태종 3) 12월까지 재임. 조선태종의 중앙집권정책에 맞물려 제주토착세력의 최상급인 성주(星主), 차상급인 왕자(王子) 각각 좌도지관, 우도지관으로 명칭 바뀜.

 

36대 목사 이원항 : 1404(태종 4)부터 1406(태종 6)까지 재임. 1406년 제주에 침략한 왜구 격퇴, 제주 서귀포 법화사의 동불(銅佛)을 명나라로 보내기 위해 육지로 이송.

 

37대 목사 조원 : 1406(태종 6)부터 1409(태종 9) 4월까지 재임. 동아막(성산읍 수산리), 서아막(한경면 고산리) 즉 목호가 원나라 통치기부터 말을 관리해오던 시설 철폐. 법화사 노비 구조조정 나머지 노비 전농시(제향에 쓸 곡식을 맡아보던 관청)에 붙임.

 

38대 목사 정초 : 1409(태종 9) 4월부터 1410(태종 10) 1월까지 재임. 여러 가지 실정(失政)으로 파직됨.

 

39대 목사 김정준 : 1410(태종 10) 1월부터 1412(태종 12) 4월 재임. 제주성 보수.

 

40대 목사 윤임 : 1412(태종 12) 4월부터 1414(태종 14) 8월 제주 향교에 전임 교수 둠. 효자열녀에게 포상함

 

41대 목사 오식 : 1414(태종 14) 9월부터 1417(태종 17) 41416년 정의현(동도), 대정현(서도) 설치로 삼읍체제 돌입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42대 목사 이간 : 1417(태종 17) 4월부터 1419(세종 1) 6월까지 재임.

 

43대 목사 정을현 : 1419(세종 1) 6월부터 1420(세종 2)까지 재임. 조정에서 내자시(왕실에서 소용되는 각종 물자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에서 사람이 와 제주토지측량

 

44대 목사 이신 : 1420(세종 2) 5월부터 1420(세종 2) 11월까지 재임. 재임 6개월만에 사임.

 

45대 목사 정간 : 1420(세종 2) 11월부터 1423(세종 5) 1월 정의현청을 진사리(성읍)로 옮김.

 

46대 목사 김소 : 1424(세종 6) 3월부터 1425(세종 7) 3월까지 재임.

 

47대 목사 조희정 : 1425(세종 7)부터 1426(세종 8) 9월까지 재임. 관청 물품들을 개인소유로 빼돌리다가 적발돼 파직됨.

 

48대 목사 장우량 : 1427(세종 9) 1월부터 1429(세종 11) 4월까지 재임.

 

49대 목사 김흡 : 1429(세종 11) 4월부터 1431(세종 13) 9월까지 재임.

 

50대 목사 김인 : 1431(세종 13) 9월부터 1434(세종 16) 3월까지 재임. 1433년 윤 8월 왜구 선박 1척 나포. 조선조 원숭이를 포획해 조정에 진상.

 

51대 목사 이붕 : 1434(세종 16)부터 1434(세종 16)까지. 모친상으로 목사직 사임.

 

52대 목사 최해산 : 1434(세종 16) 10월부터 1437(세종 19) 2, 제주관청, 불로 전소. 대신 홍화각 건립. 1436년 원숭이 한쌍 조정에 진상.

 

53대 목사 한승순 : 1437(세종 19) 2월부터 1439(세종 21) 2월 제주 방어시설 정비

 

54대 목사 신처강 : 1441(세종23) 10월부터 1443(세종 25) 12월까지 재임.

 

55대 목사 기건 : 1443(세종 25) 12월부터 1445(세종 27) 12월까지 재임. 선정을 베푼 청백리로 명성을 떨친 제주목사. 나병(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해변에 구료막 설치해 의생들과 스님들로 하여금 치료에 임하게 함. 바다에서 전복을 힘겹게 따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고 가련히 여겨 전복은 조정에 진상하지 못하도록 조치함.

 

56대 목사 이흥문 : 1446(세종 28) 2월부터 1447(세종 29) 4월 목마 관리의 부정사태로 파직됨.

 

57대 목사 신숙청 : 1447(세종 29) 6월부터 1449(세종 31) 7월 관덕정 세움.

 

58대 목사 이명겸 : 1449(세종 31) 10월부터 1451(문종 1) 9월까지 재임.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목에 30, 정의현과 대정현에 각각 10척의 군함 배치.

 

59대 목사 홍익성 : 1451(문종 1) 11월부터 1453(단종 1) 11월까지 재임.

 

60대 목사 최수평 : 1454(단종 2) 5월부터 1456(세조 2) 4월 재임. 1454 12월 제주에서 지진발생. 많은 인명 사상.

 

61대 목사 장맹창 : 1456(세조 2) 4월부터 1456(세조 2) 7월 반역죄에 연루돼 3개월만에 파직, 구속됨.

62대 목사 설효조 : 1456(세조 2) 8월부터 1459(세조 5) 1월까지 재임.

 

63대 목사 원지어 : 1459(세조 5) 3월부터 1461(세조 7) 1월까지 재임.

 

64대 목사 최경례 : 1461(세조 7) 2월부터 1462(세조 8) 7월 탄핵을 받아 구속됨

 

65대 목사 복승리 : 1462(세조 8) 9월부터 1465(세조 11) 2. 폐위된 단종의 영정을 제주신당에 그려 제사를 지냈다는 혐의로 14656월 모함을 당했지만 무혐의로 풀려남.

 

66대 목사 문여량 : 1465(세조 11) 2월부터 1466(세조 12) 3월까지 재임. 선정을 펼쳐 백성들의 칭송을 얻은 청백리.

 

67대 목사 이유의 : 1466(세조 12) 3월부터 1469(예종 1) 2월까지 재임. 제주향교 보수. 도민들에게 선정을 베푼 목민관.

 

68대 목사 김호인 : 1469(예종 1) 2월부터 1470(성종 1) 10월 재임. 토산물을 너무 지나치게 과다징수하면서 빼돌리다가 파직됨.

 

69대 목사 이약동 : 1470(성종 1) 10월부터 1473(성종 4) 8. 기건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목민관에 손꼽히는 목사. 동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므로 한라산 산신제를 산천단에서 지내게 한 최초의 목사. 진상물 중 얻기 힘든 앵무조개나 무회 열매 등을 감해주었음. 부임이 끝난 후 그가 가지고 떠난 물건은 하나도 없었음. 청백리로 도민들의 칭송을 얻음.

 

70대 목사 이장손 : 1473(성종 4) 8월부터 1476(성종 7) 6월까지 재임.

 

71대 목사 정형 : 1476(성종 7) 6월부터 1478(성종 9) 8월까지 재임. 모친상으로 목사직에서 사임함.

 

72대 목사 양찬 : 1478(성종 9) 10월부터 1481(성종 12) 7월 재임. 관덕정 보수함. 1479년 유구(오키나와)에 표류했던 김비의 등 8명이 귀환해옴.

 

73대 목사 최전 : 1481(성종 12) 7월부터 1484(성종 15) 1월까지 재임.

 

74대 목사 이거인 : 1484(성종 15) 4월부터 1486(성종 17) 7월 재임.

 

75대 목사 이수생 : 1486(성종 17) 10월부터 1487(성종 18) 7월 재임. 재임 중 관청에서 병사한 최초의 목사.

 

76대 목사 허희 : 1487(성종 18) 11월부터 1490(성종 21) 5월 재임.

 

77대 목사 이종윤 : 1490(성종 21) 8월부터 1494(성종 25) 12월까지 재임. 기건과 이약동과 더불어 청백리로 이름난 제주목사. 일처리나 사법처리, 민원, 행정을 신속하고 공정히 처리했으며 선정을 베풂. 도민들이 유임시켜 달라고 조정에 부탁까지 할 정도였음. 재임 중 관청에서 병사한 두 번째 목사.

 

78대 목사 정인운 : 1495(연산군 1)4월부터 1497(연산군 3) 10월까지 재임.

 

79대 목사 민휘 : 1498(연산 4) 2월부터 1500(연산 6) 8월까지 재임. 청렴결백했고 선정을 베풀었음.

 

80대 목사 남궁찬 : 1500(연산군 6) 11월부터 1503(연산 9) 7월까지 내섬시의 종 정회이가 1499년 일본에 표류, 15011월 귀환해 일본풍토기 저술.

 

81대 목사 김율 : 1503(연산 9) 8월부터 1504(연산 10) 6월까지 재임. 청렴결백하고 선정을 베푼 목사. 재임 중 관청에서 병사한 세 번째 목사. 150410월 대사간 류헌이 간신 임사홍을 탄핵하다가 오히려 제주로 유배돼 옴.

 

82대 목사 육한 : 1505(연산 11) 4월부터 1506(연산 12) 8월까지 재임. 가렴주구를 자행한 탐관오리. 폭정으로 결국 파직됨. 150610월 대사간 류헌 등이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가다가 왜구의 기습으로 피살됨.

 

83대 목사 방유녕 : 1507(중종 2) 1월부터 1509(중종 4) 7월 청렴결백한데다 선정을 베푼 목사.

 

84대 목사 이전 : 1509(중종 4) 9월부터 1510(중종 5) 7월 재임. 15106월 부산 등에서 삼포왜란이 발발하자 문관출신인 제주목사 이전은 제주방어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 목사자리에서 물러남.

 

85대 목사 장림 : 1510(중종 5) 6월부터 1510(중종 5) 12월까지 재임. 제주 한림읍 명월성을 나무로 구축. 김녕 방호소를 별방진으로 이전함. 그러나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로 파직됨.

 

86대 목사 김석철 : 1511(중종 6) 1월부터 1513(중종 8) 6월 재임. 왜구의 침략에 대비, 제주성 외곽에 참호를 파게 함.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방비에 힘쓴 목사.

 

87대 목사 성수재 : 1513(중종 8) 9월부터 1515(중종 10) 3월 재임. 청백리. 선정을 베풀다가 재임 중 사망한 네 번째 목사.

 

88대 목사 정건 : 1515(중종 10) 5월부터 1517(중종 12) 9월 재임. 관청의 기생과 불륜을 저지른 목사. 이에 첩이 질투하므로 첩을 타살하기도 함. 구설에 오르며 사임하고 떠난 불명예를 남긴 목사.

89대 목사 이윤번 : 1518(중종 13) 4월부터 1520(중종 15) 8월 재임. 재임 중 관청에서 사망한 다섯 번째 목사.

 

90대 목사 이운 : 1520(중종 15) 9월부터 1523(중종 18) 3월 재임. 1520년 오현의 한 사람인 충암 김정이 유배와 152110월 사사됨. 재임 중 관청에서 병사한 여섯 번째 목사.

 

91대 목사 김흠조 : 1523(중종 18) 4월부터 1526(중종 21) 4월 재임.

 

92대 목사 이수동 : 1526(중종 21) 4월부터 1528(중종 23) 12월 재임. 기건과 이약동, 이종윤과 더불어 제주도 역사상 최고 목사 중 한 사람으로 꼽힘. 삼성혈에 최초로 담장을 쌓고 홍문을 세워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지내도록 한 목사. 감귤공납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별방, 수산 등 방호소에 귤 과수원을 만들어 귤 진상에 충당토록 조치함. 또 제주성 안에 없었던 우물도 최초로 파내어 식수나 화재진압 등에 활용토록 한 목사. 청백리로 이름을 날림.

 

93대 목사 송인수 : 오현의 규암 송인수와는 동명이인. 1528(중종 23) 12월부터 1531(중종 26) 6월 재임.

 

94대 목사 이희옹 : 1531(중종 26) 7월부터 1534(중종 29) 3월 재임.

 

95대 목사 송인수 : 오현의 규암 송인수. 1534년 김안로의 탄핵으로 제주목사로 좌천돼옴. 1534(중종 29) 3월부터 1534(중종 29) 6월 풍토병으로 스스로 사임함. 1682년 귬림서원에 배향됐음.

 

96대 목사 심연원 : 1534(중종 29) 9월부터 1537(중종 32) 6월 재임. 제주향교 명륜당 보수함. 향학당 건립.

 

97대 목사 김수성 : 1537(중종 32) 6월부터 1538(중종 33) 3월 재임.

 

98대 목사 권진 : 1538(중종 33) 11월부터 1540(중종 35) 8월 재임. 왜구 침략이 극심할 시기에 부임한 목사. 왜구의 침략과 약탈로 제주도민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지만 이에 잘 대처하지 못해 파직됨.

 

99대 목사 조사수 : 1540(중종 35) 11월부터 1541(중종 36) 3월 재임. 청백리로 이름 남. 선정을 베풀었음.

 

100대 목사 윤중형 : 1541(중종 36) 3월부터 1542(중종 37) 11월 재임. 관청에서 재임 중 사망한 일곱 번째 목사.

 

101대 목사 김윤종 : 1543(중종 38) 3월부터 1545(인종 1) 11월 재임.

 

102대 목사 임형수 : 1545(인종 1) 11월부터 1546(명종 1) 10월 재임. 벽지인재를 양성키 위해 월계정사를 건립하고 교육진흥책으로 김녕정사를 건립. 교육을 적극 장려한 목사. 당시 조정의 대윤파로 지목돼 파직된 후 사약을 받고 사망.

 

103대 목사 김숙 : 1546(명종 1) 10월부터 1549(명종 4) 5월 재임.

 

104대 목사 한흡 : 1549(명종 4) 5월부터 1550(명종 5) 7. 직무 태만으로 파직됨.

 

105대 목사 김충렬 : 1550(명종 5) 7월부터 1552(명종 7) 5월 재임. 1552년 천미포(표선면) 왜변 발발. 이에 대한 피해책임으로 파직됨.

 

106대 목사 남치근 : 1552(명종 7) 6월부터 1555(명종 10) 2월 천미포에 다시 침략한 왜구를 무찌른 목사. 연안에서 왜구 선박 2척 나포 성과.

 

107대 목사 김수문 : 1555(명종 10) 3월부터 1557(명종 12) 10월까지 재임. 1555년 왜구 1000여명이 다시 제주성 침략해옴. 이에 김수문 목사, 70명의 결사대 이끌고 나가 왜구를 크게 쳐부수는 대성과 올림. 1556년 왜구가 다시 침략하자 왜선 5척을 침몰시키고 왜구 120여명을 참수하는 성과를 올린 목사. 제주목관아의 망경루를 최초로 창건한 목사.

 

108대 목사 민응서 : 1557(명종 12) 10월부터 1558(명종 13) 10월 재임. 청백리로 소문이 났고 선정을 베풀었지만 남치근, 김수문 전임목사에 격파당한 왜구가 도망갈 수 있는 여지를 준 책임으로 파직된 비운의 목사.

 

109대 목사 이영 : 1558(명종 13) 10월부터 1560(명종 16) 10월 재임.

 

110대 목사 오성 : 1561(명종 16) 1월부터 1562(명종 17) 10월 재임.

 

111대 목사 김우서 : 1562(명종 17) 10월부터 1565(명종 20) 9월 재임.

 

112대 목사 이선원 : 1565(명종 20) 9월부터 1565(명종 20) 10: 가렴주구와 학정으로 도민들을 괴롭히다가 한달 만에 파직됨.

 

113대 목사 변협 : 1565(명종 20) 10월부터 1565(명종 20) 122개월 재임. 15659월 제주로 유배온 보우대사를 죽임. 부친상으로 사임함.

 

114대 목사 곽흘 : 1565(명종 20) 12월부터 1568(선조 1) 6월 재임. 백성들의 식수확보를 위해 동쪽 산지천과 가락천이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새로 보수함. 사찰을 없애기 시작한 최초의 목사. 전임 변협 목사와 더불어 억불숭유정책을 펼친 목사.

 

115대 목사 이전 : 1568(선조 1) 7월부터 1571(선조 4) 1월 재임.

 

116대 목사 소흡 : 1571(선조 4) 3월부터 1573(선조 6) 6월 재임.

117대 목사 강려 : 1573(선조 6) 6월부터 1574(선조 7) 10월까지 재임. 여러 실정으로 파직됨.

 

118대 목사 송중기 : 1574(선조 7) 12월부터 1577(선조 10) 8월 재임

 

119대 목사 임진 : 1577(선조 10) 8월부터 1579(선조 12) 10월 청백리로 이름남. 선정을 베풀었고 열녀와 효부 등을 포상함. 아들인 임제가 157710월부터 15783월에 걸쳐 서귀포를 유람한 뒤 남명소승이란 여행기를 집필함.

 

120대 목사 신각 : 1579(선조 12) 11월부터 1581(선조 12) 2월 재임.

 

121대 목사 김태정 : 1581(선조 14) 3월부터 1582(선조 15) 8월까지 제주향교를 가락천 부근으로 옮겼음. 부친상으로 사임.

 

122대 목사 최여림 : 1582(선조 15) 9월부터 1583(선조 16) 9월까지 재임. 실정으로 파직됨.

 

123대 목사 김응남 : 1583(선조 16)부터 1585(선조 18) 4월 재임. 선정을 베푼 목사.

 

124대 목사 임응룡 : 1585(선조 18) 4월부터 1586(선조 19) 8월 재임. 관청에서 재임 중 병사한 여덟 번째 목사.

 

125대 목사 양사영 : 1586(선조19) 11월부터 1589(선조 22) 10월 재임. 한라산에서 흰 사슴(노루)을 포획해 조정에 진상함.

 

126대 목사 이옥 : 1589(선조 22) 10월부터 1592(선조 25) 3월까지 재임. 조천진 신축 및 서귀진 해안으로 이전함.

 

127대 목사 양대수 : 1592(선조 25) 3월부터 1592(선조 25) 6월 재임. 임진왜란 발발. 방어시설을 순시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순직한 목사.

 

128대 목사 이경록 : 1592(선조 25) 9월부터 1599(선조 32) 1월 명월진을 돌로 쌓았으며 수산진을 성산으로 옮기려고 시도함. 관청에서 재임 중 사망한 아홉 번째 목사.

 

129대 목사 성윤문 : 1599(선조 32) 3월부터 1601(선조 34) 6월 재임. 제주성을 다시 고치고 홍예교(다리) 놓고 제이각 남문 위에 세움. 소덕유와 길운절의 역모를 적발함. 오현 중 한 사람인 청음 김상헌이 안무어사로 16018월 제주로 와서 사건을 수습함. 김상헌은 이 때 경험을 바탕으로 기행문인 남사록을 집필함.

 

130대 목사 조경 : 1601(선조 34) 8월부터 1602(선조 35) 7월까지 재임.

 

131대 목사 김명윤 : 1602(선조 35) 7월부터 1604(선조 37) 8월까지 재임.

 

132대 목사 이영 : 1604(선조 37) 10월부터 1607(선조 40) 7월까지 재임.

 

133대 목사 이응해 : 1607(선조 40) 7월부터 1608(선조 41) 6월까지 재임. 광해군이 조선왕으로 즉위한 뒤 류영경과 연관있다는 이유로 파직됨.

 

134대 목사 변양걸 : 1608(선조 41) 6월부터 1610(광해군 2) 2월까지 재임.

 

135대 목사 이기빈 : 1610(광해군 2) 2월부터 1611(광해군 3) 9월 안남국(베트남) 왕자가 일본으로 향하던 중 표도함. 이에 안남국 왕자 일행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은 뒤 왜구를 척살했다고 조정에 거짓보고하다가 들통나 파직. 유배됨.

 

136대 목사 이현 : 1611(광해군 3) 9월부터 1613(광해군 5) 2월 재임. 송상인이 유배옴

 

137대 목사 현즙 : 1613(광해군 5) 2월부터 1616(광해군 8) 4월까지 재임. 1614년 오현 중 한 사람인 동계 정온이 유배옴.

 

138대 목사 이괄 : 역사상 유명한 이괄의 난의 주인공. 1616(광해 8) 5월부터 1619(광해 11) 2월 재임. 1616년 인목대비의 생모인 노씨가 유배옴.

 

139대 목사 홍걸 : 1619(광해 11) 2월부터 1619(광해 11) 5월 재임. 관청에서 재임 중 병사한 열 번째 목사.

 

140대 목사 양호 : 1619(광해 11) 10월부터 1622(광해군 14) 10월 인조반정 뒤 인목대비 어머니 노씨부인을 학대한 혐의로 사형당함.

 

141대 목사 류순무 : 1622(광해 14) 11월부터 1623(인조 1) 8월 재임. 노씨부인과 동계 정온 등이 유배에서 풀려남

 

142대 목사 민기 : 1623(인조 1) 8월부터 1624(인조 2) 6월 재임. 선정을 베풂

 

143대 목사 성안의 : 1624(인조 2) 6월부터 1627(인조 5) 4월 재임.

 

144대 목사 박명부 : 1627(인조 5) 4월부터 1629(인조 7) 6월 재임. 16279월 화란인(네덜란드인) 벨테브레(박연) 등이 식수를 얻기 위해 제주에 첫 상륙. 서양인의 첫 제주출현.

 

145대 목사 이진경 : 1629(인조 7) 6월부터 1632(인조 10) 2월 재임.

 

146대 목사 이곽 : 1632(인조 7) 6월부터 1632(인조 10) 2월 재임.

 

147대 목사 신경호 : 1634(인조 12) 9월부터 1637(인조 15) 5월 재임. 1637년 조선 전임 국왕 광해군이 제주로 유배옴.

 

148대 목사 성하종 : 1637(인조 15) 5월부터 1638(인조 16) 6월 재임.

 

149대 목사 심연 : 1638(인조 16) 6월부터 1640(인조 18) 9월까지 재임.

 

150대 목사 이시방 : 1640(인조 18) 9월부터 1642(인조 20) 8월 재임. 164171일 광해군 서거. 화북포로 나아가 104일 경기도 양주 광해군묘에 묻힘.

 

151대 목사 원숙 : 1642(인조 20) 8월부터 1645(인조 23) 4월 재임.

 

152대 목사 류정익 : 1645(인조 23) 4월부터 1647(인조 25) 5월 재임.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들어 조정에서 진휼곡 2000석으로 구휼함.

 

153대 목사 김여수 : 1647(인조 25) 5월부터 1649(인조 27) 9월 재임. 1647년 소현세자의 아들 3형제가 제주로 유배옴. 홍화각 보수.

 

154대 목사 김수익 : 1649(인조 27) 9월부터 1651(효종 2) 7월 정의현감 안즙과 불화 빚음. 이로 인해 파직됨. 16514월 안핵어사(대검찰청) 이경억이 와서 조사함.

 

155대 목사 이원진 : 1651(효종 2) 7월부터 1653(효종 4) 10월 재임. 대정향교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단산 아래로 옮김. 네덜란드인 하멜이 대정현에 표도함. 1652년 차귀진 설치함. 하멜을 서울로 압송함. 제주의 남수구, 북수구 등을 보수함. 탐라지를 집필.

 

156대 목사 소동도 : 1653(효종 4) 10월부터 1655(효종 6) 9월까지 재임. 제주에 최악의 흉년 닥침.

 

157대 목사 구의준 : 1655(효종 6) 9월부터 1658(효종 9) 4월까지 재임.

 

158대 목사 이괴 : 1658(효종 9) 4월부터 1660(현종 1) 5월 재임. 김진용의 건의로 삼도동에 장수당(교육시설, 공부시설- 오늘날 귤림서원의 시초)을 건립. 김대길이라는 사람이 말 200필을 바치자 산장의 감목관을 배치해 관리토록 함.

 

159대 목사 이지형 : 1660(현종 1) 5월부터 1662(현종 3) 8월 재임.

 

160대 목사 이익한 : 1662(현종 3) 8월부터 1663(현종 4) 3월 재임. 제주 전선(戰船) 수리에 비리나 민폐가 많으므로 이를 혁파할 것을 건의함

 

161대 목사 이중신 : 1663(현종 4) 3월부터 1665(현종 6) 11월 재임. 제주 수군의 비리를 조사, 수군 폐지

162대 목사 홍유량 : 1665(현종 6)11월부터 1667(현종 8) 5월 재임. 제주성의 동서남문 누각을 보수하고 북쪽 물길에 홍예문 세움

 

163대 목사 이인 : 1667(현종 8) 6월부터 1669(현종 10) 9월 재임. 제주 향교를 다시 가락천 서쪽으로 옮기고 망경루 보수함. 제주목과 별방진, 명월진 등에 진휼창고를 설치함. 재임 중 관청에서 순직한 목사.

 

164대 목사 노정 : 1669(현종 10) 9월부터 1672(현종 13) 5월 재임. 당시 큰 흉년이 제주를 강타함. 진휼에 힘쏟은 목사.

 

165대 목사 윤계 : 1672(현종 13) 5얼부터 1672(현종 13) 10월 재임. 도적 8명을 붙잡아 자복을 받은 뒤 조정의 조치없이 멋대로 효수했다는 혐의로 파면당함.

 

166대 목사 김흥운 : 1672(현종 13) 10월부터 1675(숙종 1) 6월 재임. 1674년 가을 제주 최악의 흉년 강타. 구휼하는 데 힘을 쏟음.

 

167대 목사 소두산 : 1675(숙종 1) 6월부터 1676(숙종 2) 2월 재임.

 

168대 목사 윤창형 : 1676(숙종 2) 2월부터 1678(숙종 4) 8월 재임. 동해진을 모슬포로 옮김

 

169대 목사 최관 : 1678(숙종 4) 8월부터 1680(숙종 6) 5월 재임. 화북진 설치. 신병으로 스스로 목사직에서 물러남

 

170대 목사 원상 : 1680(숙종 4) 5월부터 1680(숙종 4) 8월 재임.

 

171대 목사 임홍망 : 1680(숙종 6) 8월부터 1681(숙종 7) 12월 재임. 제주향교에 책고를 설치해 사서삼경 등을 편찬함. 신병으로 스스로 사임.

 

172대 목사 신경윤 : 1681(숙종 7) 12월부터 1684(숙종 10) 4월까지 재임. 운주당 보수. 귤림서원에 규암 송인수, 동계 정온, 청음 김상헌을 배향했음.

 

173대 목사 김세구 : 1684(숙종 10) 4월부터 1685(숙종 11) 1월 관청에서 재임 중 순직

 

174대 목사 강세구 : 1685(숙종 11) 4월부터 10월 재임. 공마 부진으로 인해 파직된 비운의 목사.

 

175대 목사 이상전 : 1685(숙종 11) 10월부터 1688(숙종 14) 4월 재임. 사서삼경 간행.

 

176대 목사 이희룡 : 1688(숙종 14) 4월부터 1689(숙종 15) 5월 재임.

177대 목사 이우항 : 1689(숙종 15) 5월부터 1691(숙종 17) 12월 재임. 16892월 우암 송시열이 유배옴. 송시열 그해 6월 사사됨

 

178대 목사 윤정화 : 1692(숙종 18) 1월부터 1693(숙종 19) 4월 재임.

 

179대 목사 이기하 : 1693(숙종 19) 4월부터 1694(숙종 20) 7월 재임.

 

180대 목사 이익태 : 1694(숙종 20) 7월부터 1696(숙종 22) 9월 재임. 수정사 헐고 건입동 연무정 보수. 우암 송시열을 귤림서원에 배향했음. 귤림서원에 오현 중 사현이 배향됨, 지영록이라는 책을 집필함.

 

181대 목사 류한명 : 1696(숙종 22) 10월부터 1699(숙종 25) 5월 재임. 1698년 삼을나묘를 세우고 우도에 말 200필을 방목하기 시작.

 

182대 목사 남지훈 : 1699(숙종 25) 5월부터 1701(숙종 27) 9월 재임. 관풍안을 저술, 종루 중수, ‘탐라포정사라는 현액을 내걸었음. 식년 초시(시험) 개설

 

183대 목사 박성석 : 1701(숙종 27) 9월부터 1702(숙종 28) 6월 재임. 숙종의 환국정치로 남인 오시복이 유배옴

 

184대 목사 이형상 : 1702(숙종 28) 6월부터 1703(숙종 29) 6월 재임. 선정을 베푼 목사. 역대 목사들 중 탐라순력도로 유명한 목사. 숭유억불정책을 써 신당을 불태우고 무당들을 모두 농사짓고 세금내도록 조치함. 포작인들과 노비, 백성들의 무거운 역을 감해주었음. 120여곳이 신당을 철폐했다고 함. 남인 오시복을 보살폈다는 혐의로 파직된 비운의 목사.

 

185대 목사 이희태 : 1703(숙종 29) 6월부터 1704(숙종 30) 10월 재임. 해적선을 적선으로 과장해 조정에 보고했다가 파직됨. 관청의 기생을 곤장으로 때려 죽인 사건으로 인해 구설에 올라 유배됐음.

 

186대 목사 송정규 : 1704(숙종 30) 10월부터 1706(숙종 32) 9월 재임. 국둔 목장 정비해 10여곳을 두었고 제주성 정원루 보수

 

187대 목사 이규성 : 1706(숙종 32) 9월부터 1709(숙종 35) 5월 재임. 영주관 보수.

 

188대 목사 최계옹 : 1709(숙종 35) 5월부터 1710(숙종 36) 12월 재임. 서인 노론 김춘택의 방면을 조정에 건의했다가 파직됨.

 

189대 목사 백시구 : 1710(숙종 36) 12월부터 1711(숙종 37) 5월까지 재임. 전임지에서 세금과다 혐의로 붙잡혀감.

 

190대 목사 이익한 : 1711(숙종 37) 5월부터 1713(숙종 39) 7월 재임

191대 목사 변시태 : 1713(숙종 39) 7월부터 1716(숙종 42) 3월 재임. 대흉년 제주 강타. 이에 잘못 대처했다는 혐의로 파직됨.

 

192대 목사 홍중주 : 1716(숙종 42) 3월부터 1717(숙종 43) 9. 구휼소홀 직무태만혐의로 파직

 

193대 목사 정석빈 : 1717(숙종 43) 9월부터 1719(숙종 45) 6. 선정을 베푼 관리. 백성들 구휼에 힘씀. 관청에서 병으로 순직.

 

194대 목사 정동준 : 1719(숙종 45) 6월부터 1720(숙종 46) 6월 재임.

 

195대 목사 민제장 : 1720(숙종 46) 7월부터 1721(경종 1) 8월 재임.

 

196대 목사 정사효 : 1721(경종 1) 8월부터 1722(경종 2) 4월 재임.

 

197대 목사 최완 : 1722(경종 2) 4월부터 1723(경종 3) 5월 까지 재임. 세금이나 공납을 1년에 한번만 거두도록 조치해 민폐를 줄여 선정을 베푼 관리. 관청에서 재임 중 순직함.

 

198대 목사 신유익 : 1723(경종 3) 8월부터 1725(영조 1) 6월까지 재임. 17241월 제주성에서 큰 불이 나서 향교 소실됨. 고령전에 신축함.

 

199대 목사 한범석 : 1725(영조 1) 6월부터 1727(영조 3) 10월 재임. 선정을 베풀었음.

 

200대 목사 정계장 : 1727(영조 3) 10월부터 1729(영조 5) 7월 재임. 1728년 이인좌의 난 발발. 관청에서 순직.

 

201대 목사 이수신 : 1729(영조 5) 10월부터 1731(영조 7) 9월까지 재임.

 

202대 목사 정필녕 : 1731(영조 7) 9월부터 1733(영조 9) 8월 흉년이 또 제주를 강타. 구휼에 힘썼음.

203대 목사 정도원 : 1733(영조 9) 8월부터 1734(영조 10) 9월 절제사였던 제주목사가 방어사 직위로 바뀜. 관청에서 순직.

 

204대 목사 김정 : 1735(영조 11) 4월부터 1737(영조 13) 9. 오현의 마지막 충암 김정. 삼천서당을 건립해 서민교육에 힘씀. 화북포를 수축하는 데 힘씀. 목사인데도 몸소 돌을 나르고 일을 하다가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순직.

 

205대 목사 이희하 : 1737(영조 13) 9월부터 1738(영조 14) 10월 재임.

 

206대 목사 홍중징 : 1738(영조 14) 10월부터 1739(영조 15) 9월 재임. 굶주민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힘썼음. 선정을 베푼 관리. 신병으로 목사직에서 물러남.

 

207대 목사 조동점 : 1739(영조 15) 9월부터 1740(영조 16) 9월까지 재임. 제주성 서문백호루 보수함.

 

208대 목사 안경운 : 1740(영조 16) 9월부터 1743(영조 19) 3월 재임.

 

209대 목사 김윤 : 1743(영조 19) 3월부터 1744(영조 20) 9월 효자, 열녀 등에게 포상.

 

210대 목사 윤식 : 1744(영조 20) 9월부터 1745(영조 21) 9월 재임. 조정에 진상한 청색 귤이 썩었다는 이유로 파직된 비운의 목사.

 

211대 목사 류징구 : 1745(영조 21) 9월부터 1746(영조 22) 3월 전임지에서 나무를 남벌했다는 혐의로 파직됨

 

212대 목사 한억증 : 1746(영조 22) 3월부터 1747(영조 23) 11월 재임. 연무정을 동문밖으로 옮겼으며 선정을 베풀었음.

 

213대 목사 박태신 : 1747(영조 23) 11월부터 1749(영조 25) 10월 재임. 탐관오리. 가렴주구를 행하다가 파직당함.

 

214대 목사 정언유 : 1749(영조 25) 10월부터 1751(영조 27) 8월 진상한 귤의 부패와 공마부진 등을 이유로 파직된 목사.

 

215대 목사 윤구연 : 1751(영조 27) 8월부터 1752(영조 28) 12월까지 재임.

 

216대 목사 김몽규 : 1752(영조 28) 12월부터 1754(영조 30) 10월 재임. 1753년 운주당과 관덕정을 보수하고 제주성 동서남문에 옹중석(돌하르방)을 세운 목사. 영조의 탄신일 축하 전문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질됨

 

217대 목사 홍태두 : 1754(영조 30) 10월부터 1756(영조 32) 9월 재임. 제주향교를 광양으로 옮김. 유배죄인 동태 보고에 문제가 불거져 경질됨

 

218대 목사 이윤성 : 1756(영조 32) 9월부터 1757(영조 33) 10월 재임.

 

219대 목사 조위진 : 1757(영조 33) 11월부터 1759(영조 35) 5월 재임.

 

220대 목사 허유 : 1759(영조 35) 5월부터 1760(영조 36) 7월 재임. 전임지에서 실수했다는 이유로 파직됨

 

221대 목사 이창운 : 1760(영조 36) 7월부터 1761(영조 37) 7월 재임.

222대 목사 신광익 : 1761(영조 37) 7월부터 1763(영조 39) 5월 재임. 백성들을 위한 구휼정책에 힘씀.

 

223대 목사 이달 : 1763(영조 39) 5월부터 1763(영조 39) 7월 재임. 군사를 제멋대로 끌고 다녔다는 혐의로 경질됨

 

224대 목사 이명운 : 1763(영조 39) 7월부터 1765(영조 41) 6월 재임.

 

225대 목사 류진하 : 1765(영조 41) 6월부터 1765(영조 41) 8월 재임. 기민 구휼을 잘못해서 파직됨

 

226대 목사 윤시동 : 1765(영조 41) 8월부터 1766(영조 42) 6월 재임. 별방진 명월진에 진휼창고를 설치했고 보민고를 설치해 민원을 경청함

 

227대 목사 안표 : 1766(영조 42) 6월부터 1767(영조 43) 2월 옥에 갇힌 죄인을 죽였다는 이유로 경질됨

 

228대 목사 남익상 : 1767(영조 43) 2월부터 1769(영조 45) 7월 재임. 진휼곡식을 필요 이상으로 조정에 요청하다가 안핵사에 적발돼 경질됨

 

229대 목사 안종규 : 1769(영조 45) 7월부터 1771(영조 47) 1월 재임. 영조 탄신일에 제주 순력을 출발했다는 이유로 경질됨. = 영조 시대에는 경질된 목사가 무더기로 나타남.

 

230대 목사 양세현 : 1771(영조 47) 1월부터 1773(영조 49) 3월 삼성묘 중수, 위토를 마련해 삼성혈에 담장을 쌓은 목사. 죄인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파직됨

 

231대 목사 박성협 : 1773(영조 49) 3월부터 1774(영조 50) 5월 관청에서 재임 중 순직함

 

232대 목사 신경준 : 1774(영조 50) 7월부터 1775(영조 51) 2월 재임. 순무어사 홍상성이 제주를 들렸는데 어사가 기생을 데려온 것에 시비를 걸었다가 어사와 함께 경질됨

 

233대 목사 류혁 : 1775(영조 51) 2월부터 1777(정조 1) 3월 재임.

 

234대 목사 황최언 : 1777(정조 1) 3월부터 1778(정조 2) 12월 재임. 정의서당을 세웠으며 삼읍에 학전을 마련해 교육을 장려함. 관덕정을 보수함

 

235대 목사 김영수 : 1778(정조 2) 12월부터 1781(정조 5) 3월 재임. 운주당과 연무정을 보수함. 산지천 서안으로 성을 쌓았음

 

236대 목사 김시구 : 1781(정조 5) 3월부터 1781(정조 5) 7월까지 재임.

237대 목사 이양정 : 1781(정조 5) 7월부터 1782(정조 6) 1월 재임.

 

238대 목사 이문혁 : 1782(정조 6) 1월부터 1783(정조 7) 4월 재임.

 

239대 목사 엄사만 : 1783(정조 7) 6월부터 1785(정조 9) 5월 재임. 17852월 삼성사가 사액됐음

 

240대 목사 윤득규 : 1785(정조 9) 5월부터 1786(정조 10) 4월 진상한 귤이 부패됐다는 이유로 경질됨

 

241대 목사 이명준 : 1786(정조 10) 4월부터 1788(정조 12) 3월 재임. 1787년 흉년 제주강타. 구휼에 힘썼음

 

242대 목사 홍인묵 : 1788(정조 12) 3월부터 1788(정조 12) 10월 재임.

 

243대 목사 이철모 : 1788(정조 12) 10월부터 1790(정조 14) 7월 재임.

 

244대 목사 이홍운 : 1790(정조 14) 7월부터 1791(정조 15) 8월 재임. 유배인의 자녀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됨

 

245대 목사 이운빈 : 1791(정조 15) 8월부터 1792(정조 16) 3월까지 재임.

 

246대 목사 이철운 : 1792(정조 16) 3월부터 1793(정조 17) 12월 재임. 흉년 제주강타. 구휼을 소홀히 하는 등 직무태만 혐의로 경질돼 압송됨

 

247대 목사 심낙수 : 1793(정조 17) 12월부터 1794(정조 18) 10월 재임. 안핵어사로 부임했다가 목사가 됨. 전임목사 이철운의 부정을 탄핵했으며 1794년 제주를 강타한 큰 흉년을 조정에 아뢰 구제하도록 했음.

 

248대 목사 이우현 : 1794(정조 18) 10월부터 1796(정조 20) 4월 재임. 연이은 흉년강타. 제주 최대의 위기. 1795년 봄철에 여상(女商) 김만덕이 곡식을 사들여 백성들을 구휼함.

 

249대 목사 류사모 : 1796(정조 20) 4월부터 1797(정조 21) 7월 재임.

 

250대 목사 조명즙 : 1797(정조 21) 6월부터 1799(정조 23) 7월 재임. 귤을 조정에 진상하지 못하도록 한 혐의로 경질됨

 

251대 목사 임시철 : 1799(정조 23) 7월부터 1799(정조 23) 12월 전임지에서 죄인을 죽인 혐의로 경질됨

 

252대 목사 정관휘 : 1799(정조 23) 12월부터 1802(순조 2) 3월 재임. 국둔마 1500여필이 흉년으로 폐사했는데 강성익의 도움으로 처벌을 면함

 

253대 목사 이연필 : 1802(순조 2) 3월부터 1803(순조 3) 7월 재임. 관청에서 순직한 목사.

 

254대 목사 류경 : 1803(순조 3) 9월부터 1804(순조 4) 9월 재임. 공마들이 폐사돼 경질됨

 

255대 목사 박종주 : 1804(순조 4) 9월부터 1807(순조 7) 3월 재임. 망경루 귤림당책고를 보수함

 

256대 목사 한정운 : 1807(순조 7) 3월부터 1809(순조 9) 1월 재임. 연상루 공신정 군기로 중수

 

257대 목사 이현택 : 1809(순조 9) 1월부터 1811(순조 11) 6월 재임. 운주당 보수함

 

258대 목사 조정철 : 1811(순조 11) 6월부터 1812(순조 12) 6월 재임. 제주 내 연대(봉수대) 36개소 중 8개소 철폐. 18123월 홍경래의 난 발발

 

259대 목사 김수기 : 1812(순조 12) 6월부터 1814(순조 14) 4월 재임.

 

260대 목사 허명 : 1814(순조 14) 4월부터 1815(순조 15) 5월 재임. 오랜만에 청백리 등장. 청렴한데다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풂.

 

261대 목사 윤구동 : 1815(순조 15) 5월부터 1817(순조 17) 10월 재임. 청렴하면서도 선정을 베풀었던 관리.

 

262대 목사 조의진 : 1817(순조 17) 10월부터 1820(순조 20) 3월 재임. 184대 목사 이형상과 204대 목사 충암 김정을 이도1(중앙로 부근) 영혜사에 배향함

 

263대 목사 한상묵 : 1820(순조 20) 3월부터 1820(순조 20) 12월 재임. 화북포에 해신사라는 사당(배의 안전을 기원하는 사당)을 세움

 

264대 목사 백영진 : 1821(순조 21) 1월부터 1821(순조 21) 10월 재임.

 

265대 목사 이원팔 : 1822(순조 22) 1월부터 1824(순조 24) 1월 재임. 호적소 정식 조례 제정.

 

266대 목사 임성고 : 1824(순조 24) 1월부터 1826(순조 26) 6월 재임.

 

267대 목사 심영석 : 1826(순조 26) 6월부터 1827(순조 27) 8월 재임. 민폐를 덜고 선정을 베풀었던 관리. 그러나 전최(고려·조선시대 경외관원(京外官員)의 근무 상태를 여러 면에서 조사해 성적을 매기는 고과) 격식을 어긴 혐의로 경질됨

 

268대 목사 이행교 : 1827(순조 27) 8월부터 1830(순조 30) 3월 제주향교를 현재의 용담 제주중학교 옆으로 옮김. 선정을 베풀었던 관리.

 

269대 목사 이예연 : 1830(순조 30) 3월부터 1832(순조 32) 2월 재임. 좌학당 우학당 세워 교육을 장려함.

 

270대 목사 한응호 : 1832(순조 32) 2월부터 1834(순조 34) 7월 남학당과 서학당을 세움. 관덕정을 보수했고 작물로 고구마를 심게 한 최초의 목사.

 

271대 목사 박장복 : 1834(순조 34) 7월부터 1836(헌종 2) 3월 대정향교 보수. 제사용 귤을 진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됨

 

272대 목사 조우석 : 1836(헌종 2) 3월부터 1837(헌종 3) 11월 재임

 

273대 목사 이원달 : 1837(헌종 3) 11월부터 1839(헌종 5) 3월 재임. 환곡 장부를 조사해 민폐를 없애도록 노력함

 

274대 목사 구재룡 : 1839(헌종 5) 3월부터 1841(헌종 7) 3월 재임. 18409월 추사 김정희가 대정에 유배옴. 선정을 베푼 수령. 이 때 영국군함이 가파도를 약탈했음. 이를 대처하지 못한 이유로 경질됨

 

275대 목사 이원조 : 1841(헌종 7) 3월부터 1843(헌종 9) 6월 재임. 1843년 향현사를 세워 고득종과 김진용 등을 배향하고 가파도와 우도를 개간한 목사.

 

276대 목사 이용현 : 1843(헌종 9) 6월부터 1844(헌종 10) 8월 재임. 진상물 문제로 경질됨

 

277대 목사 권직 : 1844(헌종 10) 12월부터 1846(헌종 12) 2. 환해장성을 고쳐서 쌓았음.

 

278대 목사 이의식 : 1846(헌종 12) 2월부터 1848(헌종 14) 3월 제주성 북쪽 수구를 물려 쌓고 천일정(건입동 부근) 세움

 

279대 목사 장인식 : 1848(헌종 14) 3월부터 1850(철종 1) 6월 재임. 삼성사에 숭보당을 세움

 

280대 목사 이현공 : 1850(철종 1) 6월부터 1851(철종 2) 7월 관덕정을 보수했음. 전임지 문제로 파직됨

281대 목사 백희수 : 1851(철종 2) 7월부터 1853(철종 4) 12월 기민구휼에 노력한 목사.

 

282대 목사 목인배 : 1853(철종 4) 12월부터 1855(철종 6) 8월 재임. 제주향교 계성사 건립.

 

283대 목사 채동건 : 1855(철종 6) 8월부터 1857(철종 8) 6월 재임.

 

284대 목사 임백능 : 1857(철종 8) 6월부터 1858(철종 9) 12월까지 재임.

 

285대 목사 정우현 : 1858(철종 9) 12월부터 1860(철종 11) 3월 횡포를 부리다가 암행어사 심동신에 적발돼 경질됨

 

286대 목사 강면규 : 1860(철종 11) 3월부터 1861(철종 12) 2월 재임.

 

287대 목사 신종익 : 1861(철종 12) 2월부터 1862(철종 13) 2월 제주목관아 망경루 보수함

 

288대 목사 임헌대 : 1862(철종 13) 2월부터 1863(철종 14) 1월 강제검의 난이 일어난 책임으로 경질됨

 

289대 목사 정기원 : 1863(철종 14) 1월부터 1864(고종 1) 3월 재임. 찰리어사 이건필이 강제검의 난 수습.

 

290대 목사 양헌수 : 1864(고종 1) 3월부터 1866(고종 3) 8월 삼성사 제전을 마련하고 훈민편을 편찬했음. 또 효자와 열녀에게 포상하고 여러 가지 세금의 폐단을 줄여 선정으로 칭송을 받음.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격퇴한 영웅.

 

291대 목사 이후선 : 1866(고종 3) 8월부터 1868(고종 5) 10월까지 재임.

 

292대 목사 조희순 : 1868(고종 5) 10월부터 1872(고종 9) 5월 재임.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귤림서원과 삼성사 철폐됨

 

293대 목사 이복희 : 1872(고종 9) 5월부터 1874(고종 11) 7월 재임. 187311월 대원군을 탄핵한 혐의로 면암 최익현이 유배옴. 1873년 제주목 좌면이 신좌면과 구좌면으로 나뉨

 

294대 목사 이희충 : 1874(고종 11) 7월부터 1877(고종 14) 1월까지 재임. 유교 공부의 전당 경신재를 세움

295대 목사 백낙연 : 1877(고종 14) 1월부터 1881(고종 18) 5월까지 재임. 역대 제주목사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재임-5년 간 제주를 다스림. 흉년구휼에 힘썼음

 

296대 목사 박선양 : 1881(고종 18) 5월부터 1883(고종 20) 5월까지 재임. 관덕정 보수함

 

297대 목사 심현택 : 1883(고종 20) 5월부터 1884(고종 21) 12월 재임.

 

298대 목사 홍규 : 1884(고종 21) 12월부터 1886(고종 23) 5월 재임. 제주목관아 연희각 보수함

 

299대 목사 심원택 : 1886(고종 23) 5월부터 1888(고종 25) 7월 재임. 제주에 대홍수 사태 발생. 일본인들이 가파도에 침략해 가축을 뺏어감

 

300대 목사 송구호 : 1888(고종 25) 7월부터 1890(고종 27) 4월 재임

 

301대 목사 조균하 : 1890(고종 27) 4월부터 1891(고종 28) 8월 재임.

 

302대 목사 정용기 : 1891(고종 28) 8월부터 1891(고종 28) 9월 한달 재임.

 

303대 목사 이규원 : 1891(고종 28) 9월부터 1894(고종 31) 9월 재임.

 

304대 목사 이봉헌 : 1894(고종 31) 9월부터 1895(고종 32) 8월까지 재임. 방어사인 목사가 관찰사로 바뀌고 오늘날 부지사에 속하는 판관이 참서관, 현감이 군수로 바뀜. 또 조정에 바칠 공마를 철폐하고 현금으로 세금을 내도록 함. 봉수대 연대를 철폐함.

 

305대 목사 오경림 : 1895(고종 32) 8월부터 1896(건양 1) 5월 재임. 관찰사는 제주재판소 판사를 겸임하게 됨. 참서관(판관)은 검사 겸임.

 

306대 목사 이병휘 : 1896(건양 1) 5월부터 1898(광무 2) 3월 재임. 18968월 관찰사가 다시 목사로 바뀌고 제주목에 최초로 군수를 둠. 군수는 오늘날 시장과 같은 존재. 방성칠의 반란의 책임으로 경질됨

 

307대 목사 박용원 : 찰리사로 부임해 방성칠의 난을 진정시킴. 1898(광무 2) 3월부터 1899(광무 3) 10월까지 재임. 난이 수습된 뒤 스스로 사임.

 

308대 목사 이상규 : 1899(광무 3) 10월부터 1901(광무 5) 1월 재임. 탐관오리의 전형. 이재수의 난을 촉발시킨 수령이었으며 암행어사 이도재에 학정이 적발돼 파직됨. 봉세관 강봉헌과 결탁해 횡포를 부림. 이재수의 난 발발

 

309대 목사 이재호 : 1901(광무 5) 5월부터 1902(광무 6) 재임 : 1901년 황기연과 함께 이재수의 난 진압함. 이재수와 오대현 강우백을 서울로 압송하고 강봉헌을 구속함

 

310대 목사 윤석인 : 1902(광무 6) 8월부터 1902(광무 6) 10월 재임. 2개월 짧은 근무 도중 순직

 

311대 목사 홍종우 : 1903(광무 7) 1월부터 1905(광무 9) 4월 재임. 황사평성지에 천주교인들 묻음. 제주목관아의 망경루 등을 보수했음. 백성들로부터 과다하게 세금을 징수해 원성을 들었으며 1905년 면직됨.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을 1894년 암살한 인물.

 

마지막 목사 조종환 : 1905(광무 9) 5월부터 1906(광무 10) 7월 재임. 제주목사제 폐지됨. 1906년 통감부 설치 목사 대신 군수가 제주도를 다스리게 됨 1909년 제주의병 일어남

 

 

출처 : 수다
글쓴이 : 눈썹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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