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년인 1742년 10월 보름 경기도관찰사 홍경보(洪景輔, 1692년~1745년)는 경기 동부지역을 순력하다 삭녕(연천)에 있던 우화정(羽化亭)으로 관내 연천현감 신유한(申維翰, 1681년~1752년)과 양천현령 겸재 정선(鄭敾, 1676년~1759년)을 불러 연강(임진강)에서 선유한 이를 기념하여 홍경보의 서문과 신유한의 글 ‘의적벽부(擬赤壁賦)’ 일부, 정선의 발문을 더해 엮은 서화첩. 개인소장.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대이(大而), 호는 창애(蒼厓).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증조부는 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 홍주문(洪柱文), 조부는 도승지 홍만종(洪萬鍾)이고, 부는 전라도관찰사 홍중하(洪重夏)이며, 어머니는 현감 정정양(鄭正陽)의 딸이다.
1082년(임술년) 10월 보름 중국 문인 소동파가 적벽에서 즐겼던 뱃놀이를 흉내 낸 이날 모임을 정선이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 두 점의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은 3명이 한 첩씩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한 벌만 전해오다 이번에 화첩 원형대로 한 벌이 공개됐다.
67세의 노대가인 정선이 그린 이작품은 18세기 전반에 유행한 진경산수화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홍경보는 연천의 서북쪽 삭녕 즈음에 도달하자 당시 연천현감으로 봉직하던 글 잘하는 신유한과 양천현감으로 봉직하던 그림 잘 그리는 겸재 정선을 우화정으로 불러내어 임진강을 따라 선유하였다.
관찰사의 순력중에 이루어진 유람이었기 때문인지 그림에는 호위하는 관원들과 강변에는 횃불을 들고 서 있는 많은 백성의 모습이 보인다.
마침 이날은 소식이 적벽에서 선유하였던 날과 같은 10월 보름 이었다.
홍경보는 적벽선유의 고사를 모방하여 풍류 넘치는 유람를 마친뒤 글을 짓고, 정선에게 이 장면을 그리게 했다.
홍경보는 글을 지어 소식은 불우한 시절 적적한 마음으로 선유하였지만,자신은 태평한 시절 떳떳한 놀이를 하였으니 소식보다 더 성한 풍류라고 강한 자부심을 표했다.
웅장한 구성과 힘찬 필력, 윤택하고 화사한 먹색을 구사한 정선의 진경산수화에는 이들이 보았던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나고, 평화로운 시절 관찰사의 성대한 유람이 칭송되고 있는 듯 하다.
관리로서의 순력과 유람은 태평성세에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눈다는 여민동락의 명분을 전제로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배경에서 명승의 유람과 흥취를 실경산수화로 기록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진경산수의 대가로 평가받는 겸재 정선이 67세 때 그린 두 작품은 관찰사의 요구에 따라 완성한 기록화이지만 좌우로 긴 풍경에 행사장면과 그 주변 등장인물이나 경물들을 소홀히
다루지 않고 적절히 살려놓은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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