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극장
내가 처음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초딩2학년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양목골 구석까지
찾아준 선교사 덕분 이다.
방앗간 뒷마당 기성이네 외양간 흙벽에 흰 광목천을 걸어서 스크린으로 사용했다.
우리나라 사람과 다르게 생긴 사람이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 화면에 따라 무성영화 변사(辯士)의 마술 같은 대사가 신기하다.
사람들의 탄성이 터진다.
극적인 장면에서 어김없이 필림은 끊긴다. “아~” 탄식소리...
제법 영화가 돌아가다가 발전기가 멈추기를 반복~~영화의 줄거리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모산 에 가설극장이 생겼다.
자전거를 탄 홍보맨의 방송이 낭골 동네에 울려 퍼진다.
“아 지금은 1970년 그 어느때에 사랑땜에 흐느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였던 것이었던 것 이였다”
“오늘저녁~ 오늘저녁~ 문단속과 불단속을 철저히 하신 후, 가족동반하시와~전등빛이 빛나는
모산 가설극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주시기 바랍니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이수일과 심순애 ...”
가설극장에 가 본적이 없다.
현금을 손에 쥐어 본 게 초등학교 졸업때 6년간 저금한 돈 63원이 전부다.
간간이 영화를 보고온 애들의 무용담을 듣는다.
허름한 가설극장 포장사이를 들추고 들어가 영화를 공짜로 봤다는 무용담 부러웠다.
전기 들어오는 동네에서 사는 친구들이 부럽고 존경 스러웠다.
그 후 고교2 학년인 1975년 10월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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