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갤러리/풍산홍씨선조님 저서

동국악보(東國樂譜)13世祖 홍만종

홍만식(뜸부기) 2018. 8. 23. 19:1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시평가() 홍만종(宗, 1643년∼1725년)이 편찬한 부전() 가사집.

본관 풍산(). 자는 우해(), 호는 현묵자()·몽헌()·장주(). 부는 영천군수() 홍주세(洪柱)이며, 모는 참판 정광경()의 딸이다.

정두경()의 문인으로, 김득신()·홍석기() 등과 교유하였다.

1675년 진사시에 합격, 부사정·참봉 등을 지냈다.

1680년 부사정으로서 허견()의 사건에 연루되어 간원()의 탄핵을 받고 유배, 1682년에 풀려났다.

1707년 편찬한 『동국역대총목()』이 참람되고 권문에 의탁한다는 등의 죄목으로 지평 김시환()에 의하여 비판받았으나, 최석정()의 비호로 모면하고 후에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문필 명문가 집안에 태어나 문재가 있어서 벼슬을 버리고 학문과 문장에 뜻을 두어 역사·지리·설화·가요()·시 등의 저술에 전념했다.

시평()에 있어서는 소년기부터 노년까지 깊은 연구를 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편, 장생술을 찾다가 도교에 심취되기도 하였다.

1894년 간행된 『송강별집()』 권7에 인용된 일서()로, 『송강별집』이 인용한 『동국악보』의 평어()가 홍만종의 『순오지()』에 있는 장가평어()와 일치하고, 『동국악보』와 『순오지』에 보이는 〈장진주사()〉·〈맹상군가()〉의 평어 및 ‘아동인소작가곡론()’ 서문()이 김천택의 무신본() 『청구영언()』(1728)에 전재()된 정황으로 미루어, 『동국악보』는 연민본 『잡가()』의 체제와 유사한 홍만종 편찬 가사집으로 추정된다. 최근 그동안 최초의 가곡(시조) 가집으로 지칭되던 김천택 편 『청구영언』보다 앞서 홍만종이 『청구영언』과 『이원신보』라는 가곡(시조) 가집을 편찬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홍만종 친필 교정본 『부부고()』에 수록된 이 두 가집의 서문()이 학계에 큰 파장을 주고 있는데, 홍만종이 우리 노래에 대한 관심이 컸을 뿐만 아니라, 직접 가집을 편찬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동국악보』에 대한 존재의 의미도 커지게 되었다.

『동국악보』에는 『순오지』에 평어()가 달린 〈역대가〉·〈권선지로가〉·〈만분가〉·〈면앙정가〉·〈관서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사미인곡〉·〈장진주(사)〉·〈강촌별곡〉·〈원부사〉·〈유민탄〉·〈목동가〉·〈맹상군가〉 등 작품이 수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