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石崖 홍봉주(洪鳳周, 1725년~1796년)의 시문집. 본관은 豐山, 자는 휘세(輝世)·자민(子敏), 호는 석애(石崖)·남파(南坡).
나주(羅州) 다도면 은산에서 출생. 석인본, 6권 3책. 규장각 소장.
증조부는 홍익하(洪益河)이고, 조부는 홍이동(洪以東)이며, 부는 통덕랑(通德郞) 홍수원(洪壽源)이고, 모는 오수겸(吳受謙)의 딸이다.
어려서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과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59년 기묘식년사마시(己卯式年司馬試)에 생원(生員) 3등으로 합격하였다.
그가 반궁(泮宮: 성균관)에 있을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서명응(徐命膺)은 그의 문장이 소동파(蘇東坡)에 비긴다고 칭찬하고는 호를 ‘호남의 소동파’란 뜻으로
남파(南坡)라 칭하였다.
소과에 합격한 후 휘릉참봉(徽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1783년 계묘증광문과(癸卯增廣文科)에 병과(丙科) 20등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제수되었고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종부시정(宗簿寺正)에 임명되었으나 병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자 정조(正祖)가 내의원(內醫院)과
관찰사(觀察使)에게 그를 돌보아 주도록 명하였다.
그 이후에도 사섬시정(司贍寺正)·내자시정(內資寺正)·예빈시정(禮賓寺正)·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장령(掌令)·사간(司諫)·헌납(獻納)·정언(正言)·호조참판(戶曹參議)·
형조참의(刑曹參議)동부승지(同副承旨)·부승지(副承旨) 등에 제수되었다.
그가 죽자 정조는 관찰사 서정수(徐鼎修)에게 호장(護葬)하도록 명하였다.
1904년 그의 5세손 홍복희(洪復喜)·홍석희(洪錫熹) 등이 간행한 시문집 《석애선생문집(石崖先生文集)》이 전한다.
권1·2에는 詩 491수(湖上有感 외), 권3에는 疏 5편(己酉萬言疏 외), 啓 1편(請贈兵曹判書忠勇將金公德齡贈諡啓) 등이,
권4에는 書 22편(上渼湖金先生 외), 賦 4편(復志賦 외), 義 1편(禮義如松栢之有心也), 表 1편(擬漢群臣賀人民樂業能不擾亂年六七十翁未嘗至市遊敖嬉戱如小兒狀表), 箋 2편(王世子冊封進賀箋), 頌 1편(丕顯丕承頌), 策 5편(問春云云 외), 贊 1편(保眞菴李公世樞畵像贊), 辭 1편(題吳毅齋集辭), 告文 1편(族祖錦隱公享谿澗祠告文), 上樑文 3편(錦城館重修上樑文외),
雜著 8편(庚辰記事외)등이,
권5에는 序 2편(槐亭集序 외), 跋 4편(陽山遺事跋 외), 行狀 6편(通德郞新齋羅公炯奎行狀 외) 등이,
권6은 附錄으로 酬唱詩與文·往復書牘·挽詞·行狀·墓碣銘·墓誌銘·遺墟碑·己卯式年司馬榜目·司馬榜目跋·癸卯增廣文科榜目·文科榜目跋·及門錄·題跋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 발문에 따르면, 《石崖先生文集》은 저자의 5대손 復熹·錫熹 등이 유고를 수습·정리하여 1904년(광무 8)에 간행했는데, 간행을 위한 실질적인 작업은 이들의 부친 (石川公)이 이미 대부분 이루어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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