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갤러리/풍산홍씨선조님 저서

기인한상량(杞人閒商量)17世祖 홍희조

홍만식(뜸부기) 2018. 10. 11. 04:30

조선후기의 문신 학자 홍희조(洪羲祖, 1787년~ 1864년)가 지은 지리지 개선 방안을 논의한 책. 필사본, 1책 19장, 장서각 소장, 일본동양문고 소장.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기서(耆瑞), 호는 단북(檀北), 거주지는 원주(原州)

고조부는 우부승지 洪萬紀, 증조부는 예조판서 洪重孝, 조부는 판돈령부사 洪秀輔, 부는 강원도 관찰사 洪仁浩, 생부는 예조판서 洪義浩, 생모는 참판 崔光璧의 따님이다.

1807년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이 되고, 1809년 문과 기사(己巳)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3등으로 급제했다.

1817년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었고, 이후 부교리(副校理)‧부수찬(副修撰) 등을 역임하였다.
1825년 왕실 제사에 대축(大祝)으로 참여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1829년 동래부사(東萊府使)에 임명되었고. 이후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승정원우부승지등을 역임하였다.


원표지와 후표지의 표제 및 권수제는 ‘杞人閒商量’이고, 不分卷 1冊(19張) 구성의 5침 線裝本으로 종이는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원표지와 후표지 모두 황색 종이에 문양이 없고 서명은 표지 위에 묵서하였으며, 후표지 이면에는 ‘西紀一九七二年六月藏書閣再裝’이라 묵서되어 있다.

본문은 上下單邊 左右雙邊, 有界, 上黑口, 上下向黑魚尾의 木板印札空冊紙에 쓴 10行 20字 筆寫本이고, 권수면 상단에 정방형의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본서는 특별한 목차를 구분하지 않고 일정한 내용을 나누어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내용상 구분하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역대 지리지의 편찬 과정에 대한 설명과 평가 부분이다.


두 번째는 지리지 제작 과정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어떠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지리지 제작에 반영되지 못하는 부분과 지명을 한자로 옮기는 한계점을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는 지리지 제작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지리지를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공력을 들이지 않고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제작하는 방식에 대한 저자 홍희조의 의견을 기록하였다.


네 번째는 이상적인 지리지 제작의 편제 방식을 설명하고, 지리지의 항목 체계와 그 의의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홍희조『新增東國輿地勝覽』이 편찬된 이후 지리지 제작에 대한 편제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고, 새로운 지리지 제작의 방법론을 독창적으로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