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홍의호(洪義浩, 1758년~1856년)가 왕명으로 1811년에 王大妃殿 등 각 殿·宮의 動駕時 儀註와 儀仗 등 각종 의식 절차를 집성한 자료. 필사본. 1책 37장. 장서각 소장.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중(養仲), 호는 담녕(澹寧). 원주 출생. 시호는 정헌(正憲)이다.
홍만기(洪萬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중효(洪重孝)이고, 아버지는 참판 홍수보(洪秀輔)이며, 어머니는 박종윤(朴宗潤)의 딸이며. 대사헌 홍인호(洪仁浩)의 동생이다.
16세에 향시에 합격하고, 2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784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초계문신(抄啓文臣)에 선발되고 지평·집의·응교 등을 거쳐, 동부승지, 호조·예조·공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786년 교리로 있을 때 「진팔조이강소(陳八條二綱疏)」를 올려서 언로를 넓힐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경비를 절감할 것, 군사를 조련하여 유사시에 대비할 것, 법금을 엄격히 하여 기강을 세울 것, 상벌을 명백히 하여 권징을 보일 것 등을 진언하고, 1802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이듬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대사간을 역임하고, 이어 호군이 되었는데, 영남유생 권재강(權載綱) 등의 진소(陳疏)사건과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그 뒤 복직되어 예조·형조·공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1815년과 1823년 두 차례에 걸쳐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825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남인(南人)중 공서파(攻西派)의 영수로 잘 알려져 있고, 교유 상대 역시 이헌경(李獻慶, 1719-1791), 목만중(睦萬中, 1727-1810) 등 당대에 문명(文名)이 있었던 남인 인사들이다.
만자문 청색 표지이며, 절첩본이다.
본문은 오사란에 작성되어 있는데, 한 면에 9행씩 필사되어 있으며, 班次圖 부분은 광곽만 그려져 있다.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惠慶宮動駕儀節目錄’의 서미에는 첨지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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