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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염필(智水拈筆)-19世祖홍한주

홍만식(뜸부기) 2018. 8. 21. 19:43

조선 후기에 홍한주(周, 1798년∼1868년)가 그의 견문을 수필 형식으로 기록한 문집.  

자는 헌경憲卿, 호는 해사海士, 해옹海翁, 운당芸堂, 쌍송만사雙松漫士, 총계당叢桂堂 등이고,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부친은 홍직모洪稷謨, 조부는 홍낙명洪樂命, 장인은 권상신權常愼이고, 아들은 홍우창洪祐昌과 우승祐昇이다.


황해도 배천, 경상도 의성과 상주, 전라도 보성 등지에서 군수와 현감, 목사 등의 지방관을 지냈다.

1862년 8월부터 약 1년간 나주목에 있는 섬인 지도로 유배되었는데, 그 유배 기간에 [지수염필]을 저술하였고, 서문이나 발문, 제작연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홍한주는 시문에 뛰어난 19세기 중반의 대표적인 문인 학자로, 고증적이며 박학하고, 조선이 처한 현실을 깊이 통찰한 지식인이었다.
아들 홍우창(洪祐昌)은 1866년(고종 3) 병인별시문과(丙寅別試文科)에 병과(丙科) 12등으로 급제하고, 동래부사(東萊府使), 형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좌참찬등을 지냈다.


≪지수염필≫의 내용은 모두 251측()으로 각 편마다 명칭을 달지 않은 채 고금의 문물제도와 문인·학자 등에 대한 광범위한 자신의 견문을 쓰고 있다.

≪지수염필≫의 제1권은 32측으로 우리 나라와 중국의 문물과 서체()·서적 등에 대하여 썼다.

제2권은 25측으로 주로 중국의 문인과 문물에 대하여 썼다.

제3권은 28측으로 시체() 및 우리 나라와 중국 문인에 대하여 썼다.

제4권은 29측으로 문물제도를 썼다.

제5권은 21측으로 고금의 시·서 등에 대하여 썼다.

제6권은 32측으로 주로 우리 나라 문인·학자에 대하여 썼다.

제7권은 33측으로 우리 나라 문인·학자와 작품 등에 대하여 썼다.

제8권은 우리 나라 실학자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서유구()·정약용()·김정희()·이서구() 등과 중국 청대()의 문인·학자 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지수염필≫의 특징적인 내용에 대하여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고. 전체적인 내용 중에서 특이한 점을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서구열강의 동점()에 대한 깊은 인식에 있다.

물론 그가 인식한 서양은 소박한 의미에 그쳤다.

그러나 서양의 자연과학 발달로 인한 힘의 축적과 그들의 종교를 동양에 전파하려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점은 그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둘째는 조선 후기 학문의 흐름에 대한 지적이다.

대체로 실학파들의 인식세계에 대한 논평들이다.

그는 실학파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도 정확하고 상세하게 이해하였다.

반대파들에 대하여서도 공정한 비판을 한 것에서 그의 자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의 중국과 조선의 현실을 천착하여 비판하고 그 실체를 객관적으로 적고 있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지수염필≫은 조선 후기 학문의 흐름과 당시 중국학술의 경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더욱이 이 책이 조선 후기에 그것도 실학파에 속하지 않은 인물로 객관적인 서술을 한 것이다.

이 점은 당시의 학문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수염필≫의 원본은 일본 천리대학도서관()에 이마니시문고(西)에 있다. 8권 4책. 필사본.

1983년에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면 정영식()의 집에 소장된 전사()된 낙질본( : 제3책이 빠졌음.)이 있음이 알려졌다.

2013년 9월 소명출판에서 진재교 김윤조 교수 역주로  ≪19세기 견문지식의 축적과 지식의 탄생-지수염필≫이란 제명으로 2책으로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