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갤러리/풍산홍씨선조님 저서

운석외사(耘石外史)-18世祖홍경모

홍만식(뜸부기) 2018. 8. 23. 18:47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홍경모(謨, 1774년∼1851년) )의 저서. 86권 43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

전편 20권 10책, 후편 50권 25책, 속편 16권 8책, 합 86권 43책. 필사본. 전편과 후편은 자필본이며 속편은 손자 우명(祐命)·우경(祐慶) 등이 교정하여 편집하였다. 

본관은 풍산(). 자는 경수(), 호는 관암() 또는 운석일민(). 시호는 문정().

조부는 이조판서를 지낸 홍양호()이고, 부는 홍낙원()이며, 모는 전주이씨()로 사간원정언 이존원()의 딸이다.

정조 때 동몽으로 뽑혀 편전에 입시하여 『효경』을 강()하였고, 오언시를 지어 정조로부터 서책과 패향()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1805년 성균관유생이 되었고, 181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 해에 시독관()으로서 홍문관에 장서가 없음을 개탄하고 계청()하여 『예기』·『주역』·『퇴계집(退)』 등을 간행하게 하였다.

그 후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관리등용의 실책으로 한 때 법성첨절사(使)로 좌천되기도 하였다가 곧 중용되어 1830년 사은부사(使)로,

1834년 진하사(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헌종 때 대사헌을 거쳐 이조·예조·호조·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고,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독서를 즐겨 장서가 많았으며,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뛰어났다.

1830년(순조 30) 청나라에 진하사(進賀使)의 일행으로 갔을 때 초고본인 『관암전서(冠巖全書)』와 『관암존고(冠巖存藁)』를 함께 가져가서 기수유(紀樹蕤) 등 청나라 학자 7인에게 교열을 받고 귀국 후 정서한 것이 이 책의 전편·후편과 그의 또다른 저서 『관암유사(冠巖遊史)』이다. 

초고보다는 문장이 세련되고 편집체계가 다소 다르지만 내용상 차이는 거의 없다.

권두에 기수유·육경이(陸慶頤)와 저자의 서문이 있다.

전편은 유년시절에서 처음 벼슬길에 나선 36세까지의 저술로 엮어졌고, 후편은 그뒤부터 60세까지 쓴 글이 수록되었다.

속편은 60세 이후의 저술을 실었으므로 초고본과는 내용이 다르다.

속편의 「외사전편인(外史前編引)」에서는 전편이 10책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권19·20의 1책이 산실되었다.

일반적인 문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풍() ·척독()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단군묘() ·기자묘() ·대동강() ·부벽루() 등 평양 및 그 일대의 사적에 관한 글들이 있다.

잡저 가운데 <추정기사()>는 조부로부터 29년 동안 배우면서 듣고 본 일들을 57조()로 적은 것이다.

속편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이본()이 남아 있다.

『운석외사』라는 서명 아래 전편 18권, 후편 4권 등 모두 11책이 현존하나 원래의 저술체재는 아니며, 『관암산방신편운석외사(冠巖山房新編耘石外史)』 23책, 『관암산방신편운석외사속편(冠巖山房新編耘石外史續編)』 8책 등에 각 권의 순서가 뒤섞인 채 여러가지 서명으로 편집되어 전한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