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일사(丙寅日史)』 필사본 1책은 홍한주(洪翰周, 1798-1868)가 쓴 병인년(1866)의 일기로, 홍한주는 일기를 1년 단위로 1책씩 묶어서 제목을 붙이고 책으로 만들었고, 그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미국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에 3책이 소장되어 있다.
일반적인 일기의 서술 방식이다. 병인년에 홍한주 개인은 그야말로 ‘맑았다.’ 그는 특별히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비로소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전라도 지도(智島)에서의 유배에서 풀려나서 돌아온 것을 이른다. 해배되고 처음에는 『신유일사』에 보인 대로, 공주 부근의 향저(鄕邸)에서 기거하다가 이 때 비로소 서울의 본디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게다가 3월말에는 아들 우창(祐昌)이 문과를 하고, 4월초에는 저자 자신이 서용되었다.
병인년은 1월 9일의 서양 선교사 체포로 시작되었다. 조선에 온지 11년이나 되었고, 홍한주에게는 한 집안 사람인 홍봉주(洪鳳周)의 집에 묵고 있었다. 홍봉주의 조부 낙민(樂敏)은 신유사옥(1801)에 죽었고, 부친 재영(梓榮) 역시 천주교도로 전주 감옥에서 죽어서, 3대가 모두 죽임을 당한 집안이라고 한다. 1월 16일 남종삼(南鍾三)이 체포되어 1월 21일 홍봉주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고, 전후로 프랑스인 선교사 9명이 처형되었다. 이때 같이 처형당한 사람 가운데 최형(崔炯)이라는 이는 한글로 서양서, 즉 성경을 번역하여 홍봉주의 집에 쌓아두었는데, 수진판(袖珍板) 크기의 책이 16석 분량이나 되었다고 한다. 모두 압수해서 의금부 뜰에서 불태웠다고 한다.
이른바 병인사옥으로 7월 초에 중국 정부가 경위를 묻는 외교문서를 보내오고 조선 정부는 온 조정이 그 답신에 신경을 바짝 쓰는 상황이 전개된다. 회답 문서를 판서 김경도(金景道)가 작성했지만 대원군이 직접 다시 손을 댔다는 전문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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