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갤러리/풍산홍씨선조님 저서

국천유고(菊泉遺稿)-15世祖홍래보

홍만식(뜸부기) 2018. 10. 11. 03:57

조선 말기의 학자 생원 홍래보(輔, 1706년~1780년)의 시문집. 필사본. 3권 별편 1책. 규장각 소장. 원주역사박물관 소장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의경(儀卿), 호는 국천(菊泉), 거주지는 원주(原州).

증조부는 예산현감 홍주문(洪柱文), 조부는 우부승지 홍만기(洪萬紀), 부는 동지돈령부사 홍중후(洪重厚), 어머니는 성균관사성 성준(成儁)의 따님이다.

1738년 무오년 성균생원이 되었다.


제 1권 五言絶句 35수‚ 六言絶句 2수‚ 七言絶句 30수‚ 제 2권 七言絶句 29수‚ 五言律詩 5수‚ 七言律詩 10수‚

제 3권 跋 1수(六號帖跋)‚ 銘 1수(戒小齋銘)‚ 祭文(哭亡女文) 1수‚ 雜著 1편(七峯書院揭板立約)‚ 附錄 2편(記夢‚ 居家遺訓)‚

別編 祭文‚ 陶川書院致祭文‚ 七峯書院致祭文이다.

부록은 洪來輔의 사후에 편집된 것으로, 부록중의 <記夢>편과 <居家遺訓>편의 말미에 ‘不肖子 醇浩’가 붙인 설명문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洪來輔의 子 洪醇浩가 필사자임을 알 수 있다. 

「칠봉추영()」은 강원()에 부는 바람과 떠오르는 달, 층암()을 소재로 하여 강원에 생기가 돌아 유생의 장래가 촉망된다는 내용으로, 맑은 절개가 유풍()임을 읊었다.

「심시()」는 하늘이 부여한 마음은 고금이 다를 수 없으며, 마음을 다스림의 중요성을 읊었다.

「열진사유감이작()」은 축출된 감군()은 죄도 분명하지 않고, 갱유()한 것은 멸망의 징조로 화근이 집안에 있는 줄 모르고 헛되이 만리장성만 쌓느라 백성만 괴롭힌

진()나라의 역사를 읊고, 내실이 있는 정치가 중요함을 지적하였다.

「육호첩발()」은 은거자의 삼락()을 연계하여 지은 시로 보기 드문 명문이다.

<陶川書院致祭文>에서 그를 “鄕黨의 重望을 입은 儒林의 領袖”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향촌 사회의 유력한 儒林이었음을 알 수 있고, 원주 횡성에서 거주 생할했다.
<七峯書院揭板立約>‚ <陶川書院致祭文>‚ <七峯書院致祭文>등의 항목이 실려 있는데‚ 七峯書院은 강원도 원성군 호저면‚ 陶川書院은 강원도 원성군 문막면에 소재했던 서원이다. 
도천서원의 主享 인물이 許穆의 從兄인 許厚‚ 칠봉서원이 主享 인물이 元天錫‚ 韓百謙 등인 점에서 洪來輔의 당색도 대체로 북인계 남인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최근 원주역사박물관에서 예산을 편성하여 고서 해제 및 번역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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