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갤러리/나의 이야기

족보

홍만식(뜸부기) 2020. 2. 27. 19:47





 족보가  체계적인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라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족보는 1476년(성종 7년)에 제작된 안동권씨 『성화보(成化譜)』이다.

이후에  1565년(명종 20년)에 발행된 문화유씨『가정보(嘉靖譜)가 있는데, 이는 중국가정 연간에 나왔기 때문에 가정보라고 하였단다.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명문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였는데,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 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족보가 이때 만들어졌단다.

 홍씨가 풍산으로 득성하고 적(籍)을 받은 연대는 정확히 고증할 수 없다.

후일 풍산이란 관향을 쓰게 된 것은  고려 고종 때의 국학직학공(國學直學公)이셨던 홍지경(洪之慶)을 선조로 모셔왔다.



풍산홍씨는 명문대가로 칭송을 받아 왔지만 오직 보첩을 간행치 못하여 아쉬워하던 때에 당시 경상도 관찰사이셨던 나의9대조부 홍만조(洪萬朝)께서

삼종형인 13세 만종(萬宗)에게 중임을 맞겨 1709년(숙종35) 기축년(己丑年)에 초보(初譜)를 간행한 것이 우리 풍산홍씨 족보의 시초이다.



고서경매를 통하여 풍산홍씨족보4권완질을 낙찰을 받아 모셔왔다.

한문세대가 아닌 내가 예측 하건데 기축초보가 나온뒤 58년만에 정해수보(丁亥修譜)를 1767년(영조43)에 두번째로 간행했고

이어서 165년이 지난 일제치하때인 1932년9월에 수보한 임신수보(壬申修譜)로 이해한다.


족보는 가문의 혈통이며 명세기록이다.

족보를 통하여 위대한 조상을 아는 것은 오늘의 나를 정확히 아는 길이다.

오늘 모셔온 족보는 남에겐 보잘것 없는 종이일 뿐이지만 나에겐 값진 보물이다.

풍산홍씨 박물관 건립이 되는날 이보물이 한자리를 장식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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