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갤러리/풍산홍씨선조님 저서

한중록(閑中錄)-17世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홍만식(뜸부기) 2018. 8. 7. 06:58

朝鮮 제22대 임금 正祖의 生母이며 思悼世子의 嬪인 본관은 풍산()임.

 惠慶宮 洪氏의 회고록으로 필사본 14종이 있으며 <한듕록><한듕만록> <읍혈록>등으로 불린다.


1735년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태어나 1744년에 사도세자()로 일컬어지는 장헌세자()의 빈()으로 책봉되었다.

1762년 사도세자가 죽은 뒤 혜빈()에 추서되었고,1776년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궁호가 혜경으로 올랐고,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됨에 따라 경의왕후()에 추존되었으며. 1815년에 별세하였다.


당시 왕후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홍인한()은 외척이면서도 세자의 살해를 지지하는 입장에 있었던 까닭에 경의왕후는 세자의 참담한 운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며, 후에 1795년 남편인 장헌세자()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적은 『한중록()』을 남겼다.


채제공()에게 보낸 한글 편지가 전하는데, 이 편지에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길 때 내린 봉서라는 해설이 붙어 있다.


저자가 回甲을 맞은 1795년(정조 19년) 친정조카 守榮의 부탁으로 61세. 67세. 68세. 71세 4번에 걸쳐 쓴 4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은 저자의 어릴때부터 50여년간의 궁중생활 이야기로 순수한 회고록이며, 나머지 3편은 손자인 순조에게 보일 목적으로 친정의 억울한 자초지종을 파헤친 글이다.

내용은 사도세자가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한 참변을 주로 하여 國家 宗社에 관한 黨爭의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등을 순 한글문장으로 묘사하였다.

 

이 글은 역사적 인물을 다룬 政界實話로서, 사용하던 한자숙어. 특수한 존경어. 궁중용어등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크다.

내간체로서 조선 여성의 裏面史를 엿볼 수 있으며, 경어체의 수려한 문장으로 씌어져 <仁顯王后傳><癸丑日記>와 함께 궁중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1947년 李秉岐의 註解本, 1961년 李秉岐. 金東旭 校注의 活字本 <한듕록>이 나왔다.


6권 6책. 필사본.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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