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갤러리/풍산홍씨선조님 저서

사의당지(四宜堂誌)-18世 홍경모

홍만식(뜸부기) 2018. 8. 11. 22:20

조선 후기의 문인 홍경모(洪敬謨, 1774년∼1851년)가 1824년 사의당의 역사, 구조, 조경, 실내장식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사의당지’에서 조선 가옥과 양반가의 주거 문화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사의당지]는 홍경모가 6대를 이어 살아온 자신의 집 ‘사의당’이라는 주거공간에 대한 종합보고서이다.

사의당은 당시 서울 근교의 이름난 집으로, 정당만 100칸이 넘는 대저택이었다고 한다.

저자 홍경모는 이런 그의 집을 마음껏 자랑한다.

건물의 구조와 조망에서부터 선조들이 모은 고서화와 골동품까지, 집 안의 물질적인 소유물에 대한 기록이 중심이 된다.
[사의당지]는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문인의 기록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18세기는 정보의 집적과 정리의 시대였다.

사회와 문화 전반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편찬하는 일이 크게 유행하여 ‘지()’를 편찬하는 일이 활발했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사적 흐름을 이어 홍경모는 자신의 집과 땅에 대한 ‘지’를 편찬했다.

홍경모 대에 이르러서는 집안이 점점 쇠퇴하여 선조가 물려준 기물을 다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은 당시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문화를 읽을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소통의 힘을 보여준다.

“사의당(四宜堂)은 으슥하여 산림과 강호에 물러나 사는 멋이 있고, 또 탁 트여 도시와 교외를 함께 바라보는 전망이 있다.”

사의당은 조선 인조가 고모인 정명공주에게 하사한 저택으로 당대 대표 건축물로 손꼽혔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총 8장 중 집의 구조를 설명한 ‘당우제이(堂宇第二)’에서 저자는 “정당(본채)의 제도(구성)는 7개의 기둥과 20칸 반이다”라며 각 건물의 배치부터 기둥 수까지 기록했다.

숙신씨(肅愼氏·고조선 시기의 중국 이민족)의 돌도끼와 돌화살촉, 서양의 자명종, 일본에서 들여온 종려나무와 왜철쭉 등 집안 대대로 수집해온 각종 골동품과 외국 물건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트인 마루가 온돌방보다 배가 되는 것은 옛 제도인데, 이제 모두 이와 반대로 하였으니 지금에 맞게 했다”는 구절에서는 조선 후기 주거지에서 마루보다 온돌의 비중이 더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사의당지’를 번역한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특정 가옥에 대해 이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사의당지’는 조선 후기 서울 선비들의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18세기 조선의 지적 신선함을 보여주는 문헌을 소개하는『18세기 지식』시리즈. 참신한 시각을 갖춘 18세기의 문헌을 살펴보며, 18세기를 더 넓은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근 사의당지를 번역한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휴머니스트)는  이종묵 교수가 고서 「사의당지」를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주로 현대인의 지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주제를 다룬 단행본을 번역하였다.

시기적으로는 18세기에 속하는 자료가 많고, 일부는 19세기 전반기에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