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경(鄭斗卿)의 문인으로, 김득신(金得臣)·홍석기(洪錫箕) 등과 교유하였다.
1675년 진사시에 합격, 부사정·참봉 등을 지냈다.
1680년 부사정으로서 허견(許堅)의 사건에 연루되어 간원(諫院)의 탄핵을 받고 유배, 1682년에 풀려났다.
1707년 편찬한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이 참람되고 권문에 의탁한다는 등의 죄목으로 지평 김시환(金始煥)에 의하여 비판받았으나, 최석정(崔錫鼎)의 비호로
모면하고 후에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문필 명문가 집안에 태어나 문재가 있어서 벼슬을 버리고 학문과 문장에 뜻을 두어 역사·지리·설화·가요(歌謠)·시 등의 저술에 전념했다.
시평(詩評)에 있어서는 소년기부터 노년까지 깊은 연구를 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편, 장생술을 찾다가 도교에 심취되기도 하였다.
권두에 1652년(효종 3)에 쓴 홍만종의 자서(自序)와 권말에 1714년(숙종 40)에 쓴 임경(任璟)·임방(任埅)의 발문이 있다.
홍만종은 자서에서 시평의 중요함을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시로써 일가를 이룬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시를 평한 글은 매우 적다.
이 점을 애석히 여겨서 시평 가운데에 볼만한 것을 가려 싣는다고 하였다.
그가 읽어본 제가(諸家)의 책은 조야(朝野)의 사적과 떠도는 말까지 기록되어 편질(篇帙)이 방대하였다.
그래서 그 중에서 시화에 관련된 부분만을 취하여 뽑아서 ≪시화총림≫에 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시인 묵객과 산승·규수의 명구(名句)가 남김없이 실렸다고 자부하였다.
≪시화총림≫의 권1의 첫머리에는 목차와 범례가 실려 있다.
범례에서 ≪시화총림≫은 ≪파한집≫·≪보한집≫·≪동인시화≫ 등의 시화로만 이루어진 것은 초록하지 않고, ≪역옹패설≫·≪어우야담≫ 등의 시화가 편입 되어 있는 책에서
시화에 해당하는 것만 초록하였다고 밝혔다.
≪시화총림≫에는 모두 24종의 시화서가 수록되어 있다.
권1에는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 白雲小說≫,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 櫟翁稗說≫,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傭齋叢話≫, 남효온(南孝溫)의 ≪추강냉화 秋江冷話≫, 김정국(金正國)의 ≪사재척언 思齋摭言≫, 조신(曺伸)의 ≪소문쇄록謏聞瑣錄≫,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 龍泉談寂記≫가
권2에는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 遣閑雜錄≫, 권응인(權應仁)의 ≪송계만록 松溪謾錄≫,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 稗官雜記≫, 이제신(李濟臣)의 ≪청강시화 淸江詩話≫, 윤근수(尹根壽)의 ≪월정만록 月汀謾錄≫,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 五山說林≫, 신흠(申欽)의 ≪청창연담 晴窓軟談≫·≪산중독언 山中獨言≫이
권3에는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 芝峰類說≫,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 於于野談≫, 허균(許筠)의 ≪성수시화 惺叟詩話≫, 양경우(梁慶愚)의 ≪제호시화 霽湖詩話≫, 장유(張維)의 ≪계곡만필谿谷謾筆≫이
권4에는 김득신(金得臣)의 ≪종남총지 終南叢志≫, 남용익(南龍翼)의 ≪호곡만필 壺谷漫筆≫, 임방의 ≪수촌만록 水村謾錄≫, 임경의 ≪현호쇄담 玄湖瑣談≫ 등이
권말에는 홍만종이 여러 시화를 읽고 평이 잘못된 부분이나 시구가 잘못 적힌 것을 바로잡아 <시화총림증정 詩話叢林證正>이라 하여 부록으로 수록했다.
여기에서는 그의 날카로운 감식안으로 시의 작자를 고증하여 바로잡기도 하고, 시의 출처를 밝혀 표절여부를 가려내었다.
≪시화총림≫은 중국의 ≪역대시화 歷代詩話≫에 비견되는 우리 나라 시화의 집성이라 할 수 있고, 우리 나라 비평문학의 조감도라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시학에 대한 심오한
조예를 담고 있다.
≪시화총림≫은 1961년문림사(文林社)에서 유인하여 배포하였고, 1973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하여 간행하였고. 1980년태학사(太學社)에서 ≪홍만종전서≫ 속에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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