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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금수저 그리고 옻수저

나는 필시 흙수저를 타고 났을거라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내 몸에는 아예 금붙이가 없다. 그 흔한 금니도 없으니 말이다. 코로나가 극성인 시기에 서울에 올라왔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간단한 요기를 위하여 식당에 들어 갔다. 잘난 서울 금수저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9번 옻칠된 수저셑트를 내놓고 식사를 하였다. 식당에 비치 되어 있는 수저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점을 생각해본다. 칫솔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나. 어떤 심각한 병환을 앓고 있는 사람의 입속을 들락거렸을 식당의 수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게 옳으냐? 숨 쉬는 공기도 못믿어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시점에서 보건복지부는 무슨생각으로 업무에 임하고 봉급을 타먹을까? 이번에 재난지원금을 3조원이나 국민들에..

풍산홍씨 家 유물전

은제삼작노리개,조선시대 매죽문 장식의 방아다리, 중앙에 복자(福字)를 새긴 원형 투호(投壷)와 가운데 수자(壽字)를 새긴 육모형 투호로 구성되어 있다. 섬세한 은세공(銀細工) 솜씨가 돋보이는 중삼작(中三作) 노리개이다. 노리개의 매화문 중앙에 계관석(鷄冠石)을 물려 화려함을 더하고 있으며 위쪽에는 칠보 나비형 띠돈, 아래쪽에는 남 · 홍 · 황3색의 쌍봉술로 장식하였다. 영·정조시대의 풍산홍씨家 유물을 숙명여대에 기증한 것이다. 11월 30일에 국보로 지정되는 우리문중의 기사계첩(보물 639호)을 박물관에 기탁하고 싶다. 보물은 여러사람이 함께 볼 수 있어야 진정한 보물이 될 수가 있는법이다.

기사계첩 국보된다.

홍만조초상화 풍산홍씨 정익공파종회의 유물인 기사계첩이 1978년 12월 7일 보물 639호로 지정된 후 42년 만 에 국보로 승격된다. 숙종 하사로부터 300년간 보관을 잘해준 종가의 공로가 크다. 기사계첩은 현재 박물관과 개인 소장 등 총 5건이 전하는데 이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지난해 국보 325호로 지정됐다. 우리 문중의 기사계첩은 보관상태가 매우 좋다는 점 뿐 아니라 "晩退堂藏", "傳家寶藏" 이라는 글씨가 기록되었고, 화첩을 내함(內函)에 넣고 호갑(護匣, 가죽함)을 두른 후 외궤(外櫃)에 넣었는데 이 삼중의 보호장치가 그대로 전해진 점이주목 받았다고 한다. 풍산홍씨 정익공파종회 회장인 나도 실물을 본 적이 없다. 종중의 재산목록에 수록 되었지만 종가에 보관되어 있어서 분쟁이 있었지만 원형대..

외종대부 장주공의 회갑을 축수한 詩

壽外從大夫長州公回甲 緋衣星髮六旬翁 비의성발육순옹 鼓瑟中堂樂與同 고슬중당낙여동 時回重晬偕德閤 시회중수해덕합 慶占來歲頌慈宮 경점래세송자궁 華筵繞膝兒孫隊 화연요슬아손대 暮境怡神水石叢 모경이신수석총 外氏門闌完此福 외씨문난완차복 介眉新什遞郵筒 개미신집우체통 번역... 외종대부 장주공의 회갑을 축수함 붉은 비단옷에 하얀머리 육순의 노인이 부부가 화락하게 즐거움 함께 나누네. 때는 회갑이라 덕을 쌓은 집에 알맞고 경사는 내년을 점쳐서 자궁(慈宮)을 송축하리. 화려한 자리엔 아손(兒孫)들이 무릎을 둘러싸고 만년엔 수석(水石)을 모으며 정신을 수양하네. 외씨(外氏)의 가문에 이 복을 완전히 갖췄기에 축수하는 새로운 시를 우체통으로 부치노라.

카테고리 없음 2020.10.17

豐山老人 홍이상 간찰2

연이어 보내준 서한(書翰)을 받고 매서운 더위에 한가롭게 지내는 맛을 맑게 보전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매우 위안이 되고 매우 위안이 됩니다. 나는 병이든 나머지 또 타는 듯 한 가뭄을 만났으니 이따금 거의 답답하여 까무러칠 지경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요. 수태(首台 : 領相)의 서찰(書札)을 전해 받고 소시깅 막혔던 가운데 펼쳐보니 갑절이나 감사하여 마지않았습니다. 자세한 사연은 피곤하여 엎드려 적습니다. 단만 때를 맞아 더욱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6월 11일 풍산노인(豐山老人 ) 탈초 連承 연승 手翰憑審酷暑 閑味淸保 甚慰甚慰僕病餘又遭旱焚 수한빙심혹서 한미청보 심위심위복병여우조한분 往往殆欲悶絶 人生餘幾 首台書蒙傳致 披瀉於阻音之中 왕왕태욕민절 인생여기 수태서몽전치 피사어조음지중 倍感不已 縷縷困劣 伏草..

카테고리 없음 2020.10.11

12대조 모당 홍이상간찰1

어떤이는 방대한 분량의 성경을 쓰고 읽기 몇번씩 한다고 한다. 선조님께서 남기신 글을 읽고 뜻을 음미하지 않는다면 어찌 후손의 도리라 하겠는가? 쓰지는 못하지만 의미를 되새기며 종친들께 전달하고자 한다. 고개를 지날때, 한 번 뵙고 작별하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서운하고 그리운 심정은 밤이고 낮이나 잊지 못하더니, 갑자기 천 리 멀리서 보내주신 위문 서한을 받고 겸하여 아름다운 시문(詩文)도 보내주셨으니 진중(珍重)함이 밖으로 넘쳐나 펼치고 여러 차례 읽어보니 완연히 맑은 모습을 대하는 듯 하였습니다. 이곳의 기쁘고 위안됨은 말로 어찌 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생(鄙生: 비루한 자신)은 노인을 모시고 도성(都城)으로 들어와 그런대로 예전 모습을 보전하고 있으니, 다른 것은 어찌 말씀드리겠습니까. 졸렬(拙劣..

카테고리 없음 2020.10.11

대하(大蝦) 구별하는법

1)블랙타이거-페루산 2) 흰다리새우 3) 자연산대하 대하(大蝦)철이 돌아 왔다. 대하는 안면도 백사장항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 백사장항에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를 잊은 듯 식당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본래 사람사는 모습인데 언제부터 어색하게 느껴졌다. 수족관에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것은 100% 흰다리 새우로 알고 있다. 사료를주어 양식하는 새우인데 항생제 투여량이 많다고 들었다. 여유로운 생활은 아니지만 섭생은 제대로 해야한다. 2020년10월10일 자연산대하 싯가는 1kg 75,000원을 홋가 한다. 백사장항 명성을 듣고 페루에서 블랙타이거가 찾아왔다. 돈 이란 녀석보다 눈밝은것이 없는듯 하다. 대하를 판별하는 법을 포스팅해 보았다. 오늘 손녀 지아께서 오신단다.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0.10.10

호적단자-한국 천주교 최초수덕자 홍유한

예산군 두촌면 호동리 8통3호 거주시 유학 홍유한 호적단자(모당공문중 지계공파 홍기홍 소장) 홍유한(洪儒漢)선생은 한국 천주교 최초 수덕자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1765년(을유)에 작성된 「두촌면(豆村面) 호동리(狐洞里) 호적단자(戶籍單子)」에는 홍유한의 집이 두촌면 호동리 8통 3호에 있었고 당시 홍유한의 나이는 40세 였다. 1757년 서울에서 여사울로 내려온 이후 8년째 되던 해였다. 동거인 명부에 나오는 아들 팔희(八喜, 洪羲寅(초휘 洪樂質)의 아명)가 12세였다. 이 호적단자 안에 동거인으로 등재된 당년 15세의 아우 문인(文寅)이 복자 홍낙민(루카)이다. 1758년경 홍양한이 여사울로 이주하여 살다가 홍양한이 세상을 뜨고, 홍낙민, 홍낙교 형제는 한마을에 살던 재당숙 홍유한의 훈도를 받고..

여사울성지

종친으로 부터 사람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여사울성지 근처에 산다고 한다.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여사울을 찾아 나섰다. 예쁜 성당이 보인다. 일요일임에도 코로나로 인하여 예배를 드리지 않는 모양이다. 찾고있는 종친이름을 대자 성당에서 회장을 맏고 있다고 하면서 가까이 오지 말라며 경계가 심하다. 기왕 왔으니 성지를 둘러본다. 처음본것은 신종리 공소이다. 초딩시절 크리스마스때 교회를 가보고 성당은 처음 방문이다. 전등을 켜고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 홍낙민, 홍재영, 홍병주, 홍영주 홍필주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낙민은 첫째, 백영(栢榮) 둘째, 기영(杞榮) 세째, 재영(梓榮)을 두었다. 기영(杞榮) 아들 병주(秉周)베드로 1798生 1840 세남터에서 순교, 차손 영주(永周)1801生 1841년 새남..

날씨 거미에게 묻다.

기상청의 9일 오후 3시예보에 따르면 중부지방은 밤새많은 비를 내린다고 한다. 서쪽 하늘에 비구름이 잔뜩 머무는데, 우리집 높은 창가에 거미 한 마리가 일용할 양식을 얻고자 부지런히 집을 짓고 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실천하는것인가? 아니면 본능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을것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기상청의 예보와 거미의 판단력을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