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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비(遲遲臺碑)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지지대비를 찾았다. 지지대비(遲遲臺碑)는 조선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1807) 화성 어사 신현의 건의로 세워진 비이다. 정조는 생부인 사도세자 능인 화성의 현륭원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으레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능을 뒤돌아보며 이곳을 떠나기를 아쉬워하였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비의 비문은 홍문관제학 서영보가 짓고,윤사국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유수 홍명호(洪明浩)가 전액을 썼다. 비운의 생애를 마친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올해 94세인 고모님의 생..

군수 홍범식 순절지

홍범식 군수 순절비는 충청남도 금산군금산읍 상옥리 산 46-1에 있다. 군수 홍범식 순절지를 다시 방문하였다. 조급한 일정에 쫒겨 제대로된 사진 촬영을 못 하였기 때문이다. 금산 소방서 근처 순절지 안내판에서 부터 400m 내 발걸음으로 10분이 소요 되었다. 금산군 주민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군수 홍범식은 금산군민의 자부심이였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행차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량을 통해 누구나 쉽게 순례를 할 수 있도록 차도를 개설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국민이 쉽게 찾아가 홍범식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함양 하도록 해야 한다. 『임꺽정』을 집필한 벽초 홍명희의 아버지인 홍범식(洪範植,1871~1910)은 충청북도 괴산에서 태어 났다.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1902년..

카테고리 없음 2021.10.14

비운의 영창대군 묘역을 찾다

선조님의 발자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 연휴인 오늘은 (10월11일) 경기도지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먼저 평택향교를 탐방하였으나 우리선조님과 깊은 관련이 없음을 느껴 평택 진위향교로 직행 하였다. 비각을 세워 비문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비각창살 두개를 들쳐 올리고 들어가 하나도 빠짐없이 촬영했지만 우리 선조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선후기 예조판서,한성부판윤,판의금부사를 지내신 효헌공(孝憲公) 홍명호(洪明浩) 묘역을 탐방하는 길목에 있는 영창대군 묘역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영창대군은 선조의 적자이자 광해군의 이복동생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이다. 더구나 친누이인 정명공주께서 우리 풍산홍씨가로 출가를 하였으니, 남이라고 생각 되지 않는다. 광해군 재위 시에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한다는 무고에 연루되면서..

카테고리 없음 2021.10.11

김창언(金昌彦)의 시에 차운하다.

조선후기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좌참찬 등을 역임한 만퇴당 홍만조 시문집 계미년(1703, 숙종29) 강원 감사 때이다. 癸未江原監司時 김창언(金昌彦)의 시에 차운하다. 次金昌彦韻 객지에서 누구와 함께 중양절을 보낼까 客中誰與作重陽 막걸리와 누런 닭도 고향과 다르구나 白酒黃鷄異故鄕 눈에 가득한 농가에 굶주린 기색 짙어 滿目田家多菜色 자리에 기생 불러 노래 들을 마음 없네 無心歌席喚梅粧 구름 사이 서리 소식 전하는 기러기 끊기고 雲間雁斷霜前信 울타리 아래 꽃은 비 내린 뒤 향기가 짙네 籬底花添雨後香 비로봉 위에 올라가 앉아 欲向毗盧峰上坐 온갖 시름 모조리 잊고 싶네 千愁萬慮摠相忘 1. 김창언(金昌彦) : 1676~1722 만퇴당의 외사촌 동생이다. 2. 구름.......끊기고 : 기러기가 가을이 깊어 서리..

만퇴당집 2021.09.28

① 군수 홍범식 자취를 찾아서...

2021년 추석 연휴를 뜻깊게 보내는 방향으로 선조님 발자취를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1907~1909년까지 태인군수를 지냈으며 금산군수로 갔다가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금산 객사 후원 소나무에 목을 매 순절한 애국지사 홍범식 군수의 선정비를 답사하였다.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보물 제289호 피향정(披香亭)의 비석 군을 쉽게 찾았다. 비석군 맨 왼쪽의 비는 고부 민란과 갑오농민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세운 현감 조규순 영세불망비(縣監 趙侯奎淳 永世 不忘碑)이다. 군수 조병갑은 아버지 조규순의 비각을 세운다고 군민으로부터 2천 냥을 거둬들였다고 한다. 행위는 불량하지만 효심은 갸륵하다. 애국지사의 선정비와 부패한 관리의 비문을 ..

카테고리 없음 2021.09.27

암행어사 홍철주영세불망비

충청남도의 비석군은 빠짐없이 답사를 하였다고 자부 했는데, 아직도 멀은것 같다. 예산군 오가면 역탑1리 마을회관 앞에 비석군이 있는데 맨 오른쪽에 어사홍철주영세불망비가 있다. 왼쪽으로 어사 이중하 영세불망비가 1893년3월에 세워졌으며 본관은 전주(全州),다음은 관찰사 조병식불망비 본관은 양주(陽州), 군수김병원(金炳鵷)애민선정비,국사보계장 권영섭기념비, 전면장 오정선씨 치적기념비,김공기태애휼기념비, 국사당보계리사 오시영기념비등이 있는데 대부분 농업용수관련한 공로비로 보인다. 안내문에는 아래와 같다. ○ 건립시기 :1867년4월 ○ 홍철주(1834~?) 조선말기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백영(伯泳) 1859년(철종 10) 진사로서 증광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866년(고종 3) 조정에서 탐학행..

만전당홍가신선생 후손을 만나다

홍가신(洪可臣 1541~1615)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당(晩全堂)·간옹(艮翁). 아버지는 홍온(洪昷)이며, 어머니는 군수 신윤필(申允弼)의 딸이다. 민순(閔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6년(선조29)에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1604년 청난공신이 된 홍가신 선생의 후손 승균씨를 만났다. 젊지만 숭조정신이 탁월하다. 봉황이 참새를 낳을리 없다. 만전당홍가신연구,수원화성박물관 학술대회의 조선중기 홍가신.허목 사상과 학문,만전당홍가신기념관 도록, 그리고 후손 홍승균씨가 저술한 청난공신 만전당 홍가신등 많은 책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준비된것이 없다. 부끄럽다. 만퇴당과 모당공을 내세웠지만 무었으로 선조님을 소개를 할까? 궁리 끝에 풍산홍씨정익공파종회 소개책자와 국보 ..

카테고리 없음 2021.09.09

선조님의 발자취 보령,홍성

2021년 8월 22일 일요일 내친김에 보령성곽이 있는 보령중학교로 달렸다. 야생화탐사 시절 무심코 흘려버렸던 비석군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이산해가 썼다는 해산루(海山樓) 보령성곽 앞에 비석군이 있지만 우리 선조님관련 비석은 없다. 쭈꾸미낚시 다닐때 보아 두었던 충청 수영성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성곽에 오르니 군사기지로 천혜의 요건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눈에 바다를 내려볼 수 있는 위치이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단 한가지 선조님의 발자취를 찾는일 이다. 드론을 띄우기위해 밧데리를 새로 구입 하였건만 오늘은 사용할 여유가 없었다. 성터안에 오직 보령 유격장군 청덕비만 있었다. 실망을 하면서 차를 돌리려는 순간 도로 건너에 유서 깊은 건물이 보인다. 충청수영 장교청(객실) 아래에 비석군이 배치되..

선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예산,홍성

2021년 8월 21일 비가 내린다. 작년 폭우로 양효공(良孝公)묘역이 수해를 입었던 기억이 있어, 황급히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에 포장을 덮고나니 비가 그친다. 내친김에 선조님 발자취를 찾아 예산군청으로 내달렸다. 지방자치제의 위력인지 군세에 비하여 청사가 엄청나게 넓고 깨끗해 졌다. 비석군을 찾아서 살펴보았지만 우리 선조님과 관련된 비석은 없었다. 예산군 대흥면 관아는 미리 돌아보았기 때문에 홍주읍성으로 향하였다. 홍성 조양문(朝陽門)은 홍주읍성의 4대 문중의 하나인 줄 오늘에서야 알았다. 홍주읍성 북문(망화 문望華門)은 복원된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홍주성에 발을 들여놓으니 원형 담장이 보인다. 살펴보니 조선시대 옥(獄)으로 현재의 교도소이다. 예의와 도를 사랑하는 선비만 ..

카테고리 없음 202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