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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늙어가는것이 아니라 익어가는것

국민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을때 일이다. 시골길에서 우마차만 볼 수 있었던 촌놈이 자동차를 많이 본것이 생애 최초였다. 남산타워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마지막 남은학생 세명속에 속하는 바람에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보지 못하였다. 방학이면 친구들집에는 피부색이 하얀 서울에 사는 친척들이 오건만, 애초 우리집은 서울사람과 인연이 닿는 사람이 없다. 그리하여 이 나이가 되도록 서울에서 묵어본 기억이 없다. 어쩌다가 서울에 가게 되면 누군가가 길을 안내하고 차표를 구매해 주어야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하고 구매를 하려면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매번 아들에게 부탁을 하는데 귀찮은 표정이다. 어느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구매를 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카테고리 없음 2020.07.29

맹꽁이 소리를 듣다.

친구에게 사기 피해를 당하여 생활이 곤궁해지자 혼자서 노는 습관이 생겼다. 산속에서 조용히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육추 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나를 되돌아본다. 사악한 인간에게 염증을 느껴 가급적 동창회 참석을 회피하였다. 미투사건으로 저명한 인사가 생을 마감했단다. 자살이라는 둥 타살이라는둥 두 가지로 갈리어 싸움질이다. 신이 내린 자연의소리 맹꽁이 합창으로 오염된 두귀를 씻고 왔다.

둥구나무

, 초딩시절 시오리길을 걸어서 학교에 가다 늘 마주치는 창터 둥구나무가 있다. 왕버들나무 이다. 나이도 꽤나 들었고 덩치도 만만치 않다. 고모님이 오시는 날이면 창터 둥구나무에서 만나 자전거로 모시고 왔다. 손님이 가실때도 둥구나무까지 배웅을 했다. 창터 사람들이 논매기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곳도 저 둥구나무 아래에서 쉬었을게다. 창터에서 태어난 아이를 두팔을 벌려 반겨 주었고, 생을 마감하는이를 하늘로 안내해 주었을거다. 둥구나무는 만인의 어머니이며, 모든이 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창터의 역사와 비밀을 간직한채 오늘도 밀려오는 도시화의 물결 소리를 듣고있다.

평촌리 약사여래입상

평촌리 약사여래입상, 보물536호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산 1-1. 오로지 자동차 전용도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찾아가야 한다. . 약사여래(藥師如來)는 이름 대로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의료에 관련된 부처란다. 약사발을 두손에 들고있는 약사여래는 고려시대에 조성된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전체 키가 552cm에 이른다. 석불(石佛)에도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륵불(彌勒佛)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를 가르킨다. 같은 돌이라도 용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계단돌로 쓰이게 되면 무수한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신세가 되고, 불상으로 거듭나면 중생들로부터 각별한 숭앙심을 받게되기 마련이다. 나는 인생에서 어느 위치에 와있는가? 계단돌이 아닌 석불(石佛)..

아산(牙山)의 돌(石)

풍산홍씨가 아산에 뿌리내리고 살게된 것은 14세조(휘 중징)께서 1730년(영조6) 에 선친인 만퇴당(휘 만조) 묘소를 이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자칭 아산의 터줏대감이라고 자부 하였다. 그러면 나는 아산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비가 오는 날 아산(牙山)의 돌(石) 둘러보았다. ‘하늘은 녹(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바위 하나에도 이름과 전설이 깃 들여져 있었다. 이름 없는 풀이 없는데 하물며 이름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이름’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는 자식이 살아갈 삶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담는다. 내 이름의 훌륭한 의미답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볼 시간을 가져보자. ‘호랑이는 ..

가설극장

가설극장 내가 처음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초딩2학년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양목골 구석까지 찾아준 선교사 덕분 이다. 방앗간 뒷마당 기성이네 외양간 흙벽에 흰 광목천을 걸어서 스크린으로 사용했다. 우리나라 사람과 다르게 생긴 사람이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 화면에 따라 무성영화 변사(辯士)의 마술 같은 대사가 신기하다. 사람들의 탄성이 터진다. 극적인 장면에서 어김없이 필림은 끊긴다. “아~” 탄식소리... 제법 영화가 돌아가다가 발전기가 멈추기를 반복~~영화의 줄거리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모산 에 가설극장이 생겼다. 자전거를 탄 홍보맨의 방송이 낭골 동네에 울려 퍼진다. “아 지금은 1970년 그 어느때에 사랑땜에 흐느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였던 ..

둠벙을 아시나요?

어린 시절 둠벙은 나의 보물창고이며 우주의 공간이었다. 주정골논을 가다가 보면 늙은둠벙이 있는데, 키가 큰 수초가 많지 않아서 물속의 생물을 관찰 할 수 있어서 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쌀방개와 보리방개가 많이 살고 있었다. 가끔씩 물뱀(무자치)이 헤엄치기도 하였지만, 독사정도는 구분을 할 줄 알았기에 물뱀을 겁내지 않았었다. 냇가 바로옆에 있는 마대 둠벙은 털게가 많이 살았다. 깊이는 어른허리가 잠길정도였으니 꽤나 깊은편이다 길이는 5미터를 넘을거다. 발가벗은 우리또래들은 이둠벙을 헤염쳐서 건너야 수리조합의 깊고 넓은곳으로 수영하러 갈 수 있는 시험대이다. 논이 옆에 있기에 개흙을 온몸에 문지르고 점프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머리가 많았다. 멱을 감고나면 찰거머리가 서너마리가 몸에 달라 붙어 있어 갈대..

16세조 홍차기효자비(洪此奇孝子碑)를 만나다

효자 홍저한(洪著漢 ) 일명 차기(此奇) 효자비각을 찾았다. 사정공계 감사공후예의 묘역에 안장되어있어 성묘를 했다. 충주감사공파의 입향조이신 14세조 홍문관교리를 지내신 휘 중현(重鉉)의 손자인 홍차기의 효행은 다음과 같다. 80세를 훨신 넘기신 수희님의 안내로 효자비각 안에 들어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탁본을 떠서 대종회 사무실 또는 풍산홍씨 기념관에 보존하여 종친들께 널리 알리고자 한다. 찿아가는길: 충북 충주시 가신1길27-9(용화사)를 이정표삼으면 찾기 쉽다. 홍차기효자비(洪此奇孝子碑) 홍차기(1759~1772년)는 자가 양여로 교리 홍중현(洪重鉉 : 1660~1726년)의 손자요, 인보(寅輔)의 아들이다. 살인죄로 옥에 갇힌 아버지의 구명을 위해 충주와 서울을 왕래하며 ..

홍윤모 호적단자

간례휘찬(簡禮彚纂)에 실린 나의직계 7대조부 노성현감(휘 순보) 증직교지 를 비롯한 호적단자 내용이다. 호적자료는 호구단자(戶口單子), 준호구(準戶口), 호적대장(戶籍大帳)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준호구는 호주(戶主)의 신청에 의해서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다. 즉 준호구는 소송시나 성적시(成籍時)의 첨부 자료로서, 또는 노비 소유[추쇄]의 자료로서, 또는 신분의 증명 및 가문 과시의 자료로서 필요했기 때문에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현재 남아 있는 대다수의 준호구는 호적 작성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옛것을 무시하는 풍조는 버려야 한다. 사람이 늙었다고 무시하는 풍조는 더더욱 위험하다. 조상을 섬기고 유지를 받드는 행동이 진정 효도의 길 이요 우리가 사는 길 이다.

모내기

열두식구가 살았던 우리집 논농사는 달뱅이논 세마지기가 전부였다. 공동묘지앞 주정골에 세마지기의 논이 열두다랭이다. 밀집모자를 벗어놓고 참을 먹다보면 한다랭이가없어졌다. 밀집모자에 한 다랭이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주정골은 집에서 오리정도 떨어진곳이다. 해마다 모내기철이 되면 일요일을 모내기날로 받는다. 아침일찍 모내기할 사람들이 아침을 먹어야 하기에 늦잠자기는 이미 글러 먹은 것 이다. 가장 먼저 모판에 모를 찐다. 찐모를 싸리나무바수거리 걸린 지게에 지고 다랭이마다 나른다. 오전새참,점심,오후접밥 세번에 걸쳐 참을 내간다. 일꾼들이 허기져선 안되기 때문이다. 참을 내갈때는 막걸리가 필수이다. 동네 주막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 오는데 매번 외상으로 받아온다. 외상으로 쑬받으러 가는게 정말 싫었다. 아니 자존..